‘논어’ ‘子罕(자한)’편의 이 章(장)은 인간의 志를 강조했다. 志는 흔히 뜻이라고 번역하는데 본래는 마음이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일을 말하여 인간 의지의 주체적 측면을 가리킨다. 다만 意(의)와 志를 대비시켜 말할 때는 意가 마음의 發動處(발동처), 志가 마음의 存主處(존주처)를 뜻한다.
三軍은 대군을 말하는데 대개 제후가 지닐 수 있는 軍勢(군세)를 말한다. 一軍(일군)은 1만2500명의 군사로 편성됐다. 三軍 가운데 中軍(중군)의 大將(대장)을 帥(수)라 하며 이 帥가 삼군 전체를 통솔했다. 三軍可奪帥也에서 三軍은 주어가 아니라 대상을 한정해서 제시하는 말이다. 곧 ‘삼군에서는’이라는 말이다. 전체 문장의 주어는 생략됐다. 匹夫不可奪志也도 같은 짜임이다. 匹夫는 한 남자라는 뜻이다. 본래 匹夫匹婦(필부필부)라고 하면 一夫一妻(일부일처)로 가족을 이루는 평민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신분상의 개념이 아니다.
三軍은 아무리 수가 많아도 군사의 마음이 합치해 있지 않으면 그 대장을 붙들어 올 수 있다. 또 三軍의 용맹함은 개별적 주체에게 있지 않고 남들의 집합에 있으므로 그 대장을 붙들어 올 수가 있다. 하지만 志는 나에게 있는 것이기에 남이 빼앗아갈 수가 없다. 志를 지닌 인간은 부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빈천하다고 해서 절개를 바꾸지 않으며 위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맹자는 “志는 氣(기)의 장수이다”라 했고, 또 “선비는 志를 숭상한다(士尙志·사상지)”고 했다. 이황은 맹자의 말에서 발단하여 선비가 무엇을 숭상하는가에 따라 한 시대가 융성하기도 하고 타락하기도 한다고 지적하고 당시의 선비들이 무엇을 숭상하고 있는지 ‘책문’에서 물었다. 지금 우리는 과연 志를 숭상하는가, 志를 훼손시키는 다른 무엇을 숭상하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