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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歲寒然後에 知松柏之後彫也라

입력 | 2009-05-07 02:56:00


김정희는 1844년에 제주도 유배지에서 ‘논어’ ‘子罕(자한)’편의 이 글에 담긴 뜻을 ‘세한도’로 그려내고 안중근은 1910년 3월에 만주 旅順(뤼순) 감옥에서 이 글을 정성스럽게 옮겨 적었다. 조선 전기의 李荇(이행)이 유배지 거제도에 지은 작은 정자를 歲寒亭(세한정)이라 하고 金富弼(김부필)이 거처하는 당을 後彫堂(후조당)이라 한 것은 君子는 患難(환난)을 당하더라도 志操(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이 글의 뜻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歲寒松柏(세한송백)이라는 성어가 이 章에서 나왔다.

歲寒은 날이 추워졌다는 말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짐을 비유한다. 이런 逆境(역경)에도 신념을 지켜나가겠다는 굳은 마음을 歲寒心(세한심)이라 하고 시절이 어려워도 節操(절조)를 잃지 않겠다는 맹세를 歲寒盟(세한맹)이라고 하며 그 절조를 歲寒操(세한조)라 한다. 然後는 그렇게 된 뒤라는 뜻이다. 松柏은 소나무와 잣나무로, 상록수를 가리킨다. 彫는 凋와 같아, 시든다는 뜻이다. 凋落(조락)의 의미이다. 後彫는 뒤늦게 시든다는 말인데, 사실은 다른 초목들이 모두 시들어도 끝까지 시들지 않고 남아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松柏을 後彫(혹은 後凋)라 부르게 됐다.

역사에는 志操 있는 사람의 일화가 많다. 한나라 成帝(성제) 때 朱雲(주운)의 折檻(절함) 고사도 한 예이다. 주운은 성제에게 “尙方斬馬劍(상방참마검)을 주시면 간신 한 사람을 참수하여 사람들을 징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상방서의 칼은 말을 벨 정도로 예리하다고 해서 참마검이라 했다. 성제가 간신이 누구냐고 묻자 주운은 성제의 인척인 張禹(장우)라고 대답했다. 성제가 노하여 그를 끌어내라고 했지만 주운은 直諫(직간)하면서 御殿(어전)의 난간을 꽉 붙잡고 있었으므로 난간이 부러지기까지 했다. 이 시대에는 歲寒松柏의 典型(전형)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