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TV의 ‘역사추적’은 오락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그나마 공영성을 지닌 교양 프로그램이다. 인문학이 대중에게 소외받고 있는 현실에서 딱딱한 역사지식을 흥미롭게 풀어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이번 주 프로그램은 조선시대 정조를 다뤘다.
民亂부추기는 KBS의 교양 프로
정조는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여러 번 찾아간 것으로 유명하다. 정조는 수원으로 가는 길을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수집하는 통로로 활용했다. ‘역사추적’ 프로그램은 흑산도에서 상경한 김이수가 1791년 1월 정조의 행렬에 뛰어들어 부당한 세금을 바로잡아 달라고 호소했던 일을 전했다. 그 과정을 설명해 나가다가 느닷없이 ‘정조가 죽고 나서 소통이 단절되자 민초들은 민란(民亂)이라는 방식으로 억울함을 표출했다’고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의 의도는 마지막 부분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청계천을 배경으로 정조와 김이수가 마주 보고 서 있는 장면을 오래도록 보여주면서 소통을 역설했다. 누가 보아도 이명박 정권을 대입시킨 것이었다. ‘소통을 안 하면 민란이 난다’ ‘소통을 안 하는 최고통치자에게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 프로그램의 메시지는 정권에 대한 협박이자 시청자 선동이었다. KBS의 이념 편향 프로그램을 전부터 많이 봐온 터라 별 감흥이 없었지만 공영방송에서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인문학 프로그램, 교양 프로그램까지 정치적으로 오염시킨 일은 무척 서운했다.
이런 소통론(疏通論)은 진보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소통을 거부하는 정부에 대해 폭력시위를 벌이는 건 정당하다는 것이다. 시위대들이 툭하면 경찰의 과잉 진압을 들먹이는 것도 이 논리에서 출발한다. 불법시위의 진압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통의 채널이 없어 임금의 행차를 막아설 수밖에 없는 시대는 아니다. 오히려 소통의 수단이 너무 많아 탈이다. 오늘도 인터넷에선 온갖 정보와 의견이 떠돌고, 수백 개가 넘는 방송 채널은 24시간 말을 쏟아내고 있다.
정작 소통 부재(不在)의 원인은 각자가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데 있다. 1년 전 촛불집회를 거치며 대립적인 집단의 인식이 더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정권은 정권대로, 반대 세력은 그들대로 자신들이 택한 길이 옳다는 생각을 더 굳게 만들었다. 촛불집회가 남긴 치명적 후유증이다. 이명박 정부도 다를 바 없지만 ‘왜 소통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느냐’고 비판하는 세력도 촛불의 부활만을 꿈꿀 뿐 상호 소통에 대해서는 아무 뜻이 없다.
정부도, 진보도 함께 달라져야
자신들은 단단한 껍데기 속에 웅크리고 앉아 일체의 소통을 거부하면서 남에겐 소통을 하지 않으면 ‘민란’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목청을 높인다. 촛불집회 주도세력의 목표는 쇠고기 재협상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를 정권 초기에 무력화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건강’ ‘소통’ ‘민주주의’ 같은 당위적인 말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 힘 빼기’를 위한 무기에 불과하다.
진보적 생각을 갖고 있는 일부는 며칠 전 ‘역사추적’을 보며 다시 힘이 불끈 솟았겠지만 ‘정조가 죽은 이후 소통이 안 되고 민란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은 사실에 어긋난다. 정조 이후의 임금들이 소통을 안 해서 민생이 피폐해지고 민란이 났다는 것은 비약이다. 조선의 쇠퇴는 왕조의 무능과 외부 요인이 겹친 것이었다. 특정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교묘하게 덧칠해 민심을 현혹하는 것은 역사의 오용이다. 이런 저급한 프로그램을 위해 수신료를 내야 하는지 의문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