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사망사건’ 당시 미2사단장을 지낸 러셀 아너레이 씨가 6일 ‘생존(survival)’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그는 “한국이 월드컵 개최로 국제적 주목을 받고, 6·25전쟁 때 생존했던 정치인들 대신 북한에 유화적인 젊은 정치인들로 교체되던 시기에 발생한 여중생들의 죽음이 반미세력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발화점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단 공보담당 소령이 사죄가 아니라 해명하는 자세를 보인 것은 한국문화에 비춰볼 때 큰 실수였다”면서 “시위대가 미군 철수를 외치고, ‘아너레이는 살인자’라고 적힌 피켓을 보며 한국을 떠나는 것은 가슴 아팠다”고 회고했다.
▷2002년 6월 13일 경기 양주시에서 생일잔치에 놀러가던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이 미2사단 소속 장갑차에 치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미군 측은 “적법한 작전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로 과실이 없다”며 사고를 낸 미군병사 2명을 출국시켰다. 이에 일부 대학생들은 8월 3일 파주 미2사단 7기갑부대 4대대 소속 장갑차 30대를 가로막고 시위를 벌였다. 11월 26일엔 일부 시위대가 의정부 미 육군 기지 캠프 레드 클라우드의 철조망을 끊고 기지에 진입했다.
▷아너레이 씨는 그해 7월 이임식 때 동두천 캠프 연병장 입구에 몰려든 시위대를 회고하며 “수천 명의 경찰병력을 가진 한국이었지만 소수의 경찰병력만 출동했다”고 썼다. 한국에 대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자신들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을 한 명도 기억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너레이 씨는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서운한 듯 미군이 50여 년간 한국에 주둔하면서 6·25전쟁에서 3만3000명이 숨지고, 10만3000여 명이 부상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2005년 9월 좌파 단체들이 인천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사령관의 동상 철거를 시도했을 때 헨리 하이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동상을 미국으로 가져가겠다”는 항의서한을 보냈다. 미국의 일방적 원조를 받던 처지에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되기까지에는 미국이 시장을 열어주고 안보 우산을 제공한 덕이 크다. ‘혈맹(血盟) 미국’을 서운하게 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자존감을 함께 찾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