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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비관론 밀어낸 유동성의 힘… 외국인까지 “사자”

입력 | 2009-05-08 02:56:00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폭풍 속에 한때 세 자릿수로 추락했던 코스피가 7개월 만에 1,400 선 고지를 탈환했다. 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1,401.08로 마감한 시황판을 보며 미소 짓고 있다. 김미옥 기자


실물경기 회복 확인 안돼

‘V자형 반등’ 더 지켜봐야

《금융위기가 벌써 끝난 것일까. 요즘 한국 증시의 분위기를 보면 지난해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패닉’(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던 악몽은 투자자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숱한 정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재만 골라 민감하게 반응했던 투자자들은 이제 호재성 뉴스에 더 강한 탄력을 받고 있다. 한동안 시장 분위기를 침울하게 했던 비관론자들은 예상치 못한 주가 오름세에 주춤해 조금씩 목소리를 낮추는 모습이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회복이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도한 흥분은 가라앉혀야 한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 증시, 7개월간의 공포에서 탈출

지난해 5월 16일 1,888.88로 연중 고점을 찍은 코스피는 그로부터 5개월여 만인 10월 24일 938.75로 떨어져 반 토막이 났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외국인의 ‘셀 코리아’, 그리고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충격이 결정타가 돼 증시는 곤두박질쳤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 9월 이후는 ‘공포’와 ‘불안’의 연속이었다.

당시 정부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다양한 대책을 쏟아냈지만 시장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외국인과 공포에 질린 개인투자자들이 끊임없이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증시는 바닥을 모른 채 가라앉기만 했다. 하루에도 100포인트 이상 지수가 출렁거리는 ‘롤러코스터’ 장세가 거듭되자 증권사들은 아예 증시 전망을 포기했다. 그런 와중에 실물경제의 깊은 침체, 동유럽발(發) 금융위기 우려 같은 2차, 3차 악재가 엄습해 증시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런 상황은 올 3월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그리고 올 3월 초까지 1,000 선 부근에서 세 번 바닥을 찍은 코스피는 그 후 힘찬 반등을 시작했다. 각국의 경기부양책과 유동성 공급의 효과가 증시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고환율로 수출 기업들의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자 상승세가 더욱 탄력을 받았다. 여기에 4월 초부터 5조 원이 넘는 외국인의 순매수까지 가세하면서 코스피는 지난해 저점 대비 50% 이상 상승했다.

중앙대 신인석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한국 주식시장의 패닉이 과도했던 만큼 회복 속도도 빠른 것”이라며 “일단 국내 금융시장이 심리적 안정은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V자형 반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

그러나 이런 현상을 보는 전문가들의 반응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3월 초부터 증시가 예상보다 빨리 상승하면서 시장 곳곳에서 과열을 경고하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투자자들이 경기회복에 대해 과도한 확신을 하고 있다는 우려였다. 심지어 경기부양정책 효과가 사라지는 하반기가 되면 다시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증시는 이런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속도 조절 없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재칠 연구위원은 “현재 금융시장의 호전은 유동성 효과일 뿐 경기가 그만큼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기업 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역사상 고점 부근에 도달했고, 1분기 실적이 좋았다고 해서 2분기 실적도 마냥 좋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며 “조정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도 7일 보고서에서 “경기하강 국면에서 나타나는 ‘약세장 반등’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번 랠리를 추격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에 따른 주가 상승 모멘텀이 어느 정도 계속될 것이란 견해도 만만치 않다. 국제 자금 흐름의 대표적인 가늠자인 리보(LIBOR) 3개월물 금리는 지난해 10월 4%대였다가 최근엔 1% 아래로 떨어졌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최원근 금융시장총괄팀장은 “한국 경제가 선진국에 비해 금융산업보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일단 하락세는 멈췄고 안정적인 관망세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증시 흐름이 국내 기업들의 실적뿐만 아니라 미국 등 글로벌 시장의 경제지표, 외국인의 움직임 등에 모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고용 및 주택시장 지표가 긍정적인 쪽으로 돌아설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정석 수석연구원은 “외환위기나 정보기술(IT) 거품 이후에도 외국인들이 주식시장에 들어오면서 유동성 장세를 이끈 점을 감안할 때 결국 국내 증시는 외국인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