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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링크]인생의 축약판 盤上에서 얻는 교훈

입력 | 2009-05-09 02:56:00


◇바둑 읽는 CEO/정수현 지음/301쪽·1만3000원·21세기북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곧잘 바둑판을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치열한 머리싸움과 전략, 전투와 타협 등 인간사가 가로세로 열아홉 줄의 바둑판에서도 일어난다는 의미다. ‘남의 집이 커 보이면 진다’ 등 바둑과 관련한 격언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다. 이 책은 프로 바둑 9단이자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인 저자가 바둑에서 찾는 교훈을 담았다.

바둑을 배울 때 귀 따갑게 듣는 말이 ‘부분에 치우치지 말고 전체적으로 바라보라’는 얘기다. 한 부분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전체적인 안목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어서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바둑이 철학과 닿아 있다고 말한다. ‘철학이야기’로 알려진 미국의 철학자 윌 듀런트가 ‘사람들이 각 부분으로 파고들어 전체적 의미를 상실하면서 삶이 공허해졌다’고 했듯 바둑이나 인생이나 한 부분에 골몰해 전체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반외팔목(盤外八目)’이란 말이 있다. 바둑판 밖에서 보면 8집이 유리하다는 이 말은 바둑을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이 형세를 더 정확하게 본다는 의미. 그래서 필요한 게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이다. 일본의 사카다 에이오 9단과 고바야시 고이치 9단처럼 프로기사 중에는 대국 도중에 잠깐 일어나 옆자리나 상대편 자리로 가서 바둑판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매너로는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의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려는 이런 시도는 의미가 있다며 자신과 이해관계가 걸린 수많은 일을 만날 때 반외팔목을 생각해보길 권한다.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바둑은 그저 상대와 싸우는 전투라고만 생각하던 사람이 어느 날 남의 바둑을 구경하다가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한 등급이 올라간다고 한다. 저자가 가르친 한 기업 이사 Y 씨의 얘기다. 바둑을 ‘대마싸움’이 아닌 ‘영토확보’로 인식한 순간 아마추어 2단인 Y 씨 실력은 아마추어 3단의 친구를 가뿐히 제칠 정도로 올라섰다. 저자는 바둑에서 어떤 수를 호수(好手) 묘수(妙手) 귀수(鬼手)라 치켜세우거나 속수(俗手) 악수(惡手)라고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수는 장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다.

정석과 포석, 끝내기 등 구체적인 기술이 아닌 바둑의 의미를 다룬 책도 많다. ‘바둑의 발견2’(부키)는 정치학 박사이자 프로 5단인 문용직 씨가 바둑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통해 바둑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분석한 책이다. 역사학과 정치학, 통계학, 문학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바둑의 본질을 찾는다. ‘전신 조훈현’(청년사)은 여러 국제 기전을 우승하며 바둑사를 다시 쓴 조훈현 9단이 자신의 바둑 인생을 써내려간 에세이다. 가족 이야기와 성장 과정, 바둑기사로서 성공하기까지의 일화, 명승부 장면 등을 담았다. ‘바둑 두는 여자’(현대문학)는 중국의 여성 작가가 1930년대 일제강점기의 만주를 배경으로 중국 소녀와 일본군 장교의 비극적인 사랑을 바둑에 비유해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 고교생이 가장 읽고 싶어 하는 책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