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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화제! 이사람]장애인 선수 김지은 非장애아 수영 강습

입력 | 2009-05-09 02:56:00

자! 몸에 힘을 빼고…장애인 수영 스타 김지은이 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린 수영 강습회에 일일교사로 나섰다. 뇌병변(3급) 때문에 다리가 편치 않은 그는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수영 노하우를 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전영한 기자


장애어린이들 날보고 ‘물살의 꿈’키웠으면…

#장면 1

물은 차가웠다. 발차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걷는 것도 힘든 그에게 수영이 쉬울 리 없었다. 친구들은 곧잘 앞으로 나갔다. 몸이 얼음처럼 굳어졌다. 수영장 벽에 붙어 있는 파이프를 잡았다. 시키는 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아이를 코치는 킥보드(물에 뜨기 위해 사용하는 보조 기구)로 때렸다. 놀란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수영교실을 빠져나왔다.

#장면 2

“하나 둘, 하나 둘. 발차기는 힘도 중요하지만 부드러워야 돼.”

김지은(26)은 킥보드에 손을 얹고 있는 아이를 붙잡았다. 자세를 고쳐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17년 전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다. 최근에야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집 근처에서 킥보드로 맞으며 수영을 처음 접했던 그는 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문화체육센터에서 수영을 가르치고 있었다.

김지은의 두 다리는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뇌병변(3급) 때문이다. 장애가 없는 아이들과 함께 수영을 배우기 힘들어 개인 교습을 받다 이내 수영을 그만뒀다. 하지만 2006년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재활 치료에 수영만 한 운동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릴 때보다 잘 걷는 거예요. 사춘기 때 남들 눈이 싫어 노력한 데다 수영으로 힘과 근육을 키운 게 도움이 됐죠.”

170cm의 늘씬한 키는 물을 가르기에 제격이었다. 한 번 익히면 평생 잊지 않는 자전거처럼 어릴 때 배운 기초 영법은 몸에 배어 있었다. 실력은 쑥쑥 늘었다. 그해 장애인전국체육대회에서 4관왕에 오르며 단숨에 장애인 수영의 간판스타가 됐다. 지난해 베이징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자유형 50, 100, 400m와 배영 100m에 출전했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모두 결선에 진출했다. 장애인 체육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초등생 12명에 노하우 전수 쉽지 않았지만 기분 좋네요

6월엔 전국체육대회 출전 非장애인 선수들에게 도전

#장면 3

“TV에서 언니를 본 것 같아요. 엄마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예뻐요.”

천경현 양(봉은초교 4학년)은 수영 중급반이다. 김지은은 이날 초급반 12명을 대상으로 강습을 했지만 천 양처럼 호기심에 초급반 레인으로 넘어온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선생님을 아느냐”고 묻자 고개를 저으며 “박태환이 짱이에요”라고 외쳤다. 연예인도 톱클래스 아니면 모르는 초등학생들이 ‘장애인 수영의 여자 박태환’을 알 리 없었다. 강습은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수강생보다 몰려든 취재진이 많아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은 수영보다 카메라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장애인 체육 진흥 중장기 계획의 일환인 초등학생 인식 개선 홍보사업’으로 이 행사를 마련했다. 아이들이 이제 집에서 TV에 나오는 김지은을 바로 알아볼 것이다. 훗날 장애인 운동선수가 비장애인인 자신을 가르쳤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벤트는 나름대로 성공이다.

#장면 4

“쉽지는 않았지만 재미있었어요. 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너무 아픈데요.(웃음) 누군가를 가르쳐 본 건 처음이에요. 선생님이라고 불린 것도 처음인데 기분은 좋네요.”

김지은은 3월에 대한수영연맹에 선수 등록을 했다. 6월에는 장애인 대회가 아닌 전국체육대회 부산 지역 예선에 출전할 계획이다. 장애인 수영에서는 적수가 없지만 비장애인 선수들과의 기록 차는 크다. 그가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달성한 자유형 100m 기록은 1분18초01. 일반 정상급 선수들은 56∼57초대에 터치 패드를 찍는다.

“결과는 뻔해요. 중거리(400m)라면 격차가 조금 줄겠지만 단거리는 특히 그렇죠. 겁이 나지만 그래도 도전할 겁니다. 저를 보고 다른 장애인들이 수영을 시작한다면 더 바랄 게 없으니까요.”

김지은이 유명세를 탄 데는 눈에 띄는 외모가 큰 몫을 했다. 예뻐야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대다수 장애인에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이 장애인 수영을 알게 됐다. 이날 그가 가르친 것도 수영만은 아니었다.

인터뷰를 마친 김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장애인체육회 직원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행사가 있으면 언제든지 참가할 거예요. 또 불러주실 거죠?”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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