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누군가의 불행은 누군가의 행복이다.
두 사람이 평생 단 한 번도 부딪힌 적이 없다 해도, 같은 날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꼭 이 불행이 저 행복으로, 저 행복이 이 불행으로 이어진 듯하다.
“음파였을 거예요.”
조수석에 앉은 민선이 깊은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석범은 새벽 바다를 헤엄쳐서 달섬을 벗어났다. 민선은 석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가쁜 숨만 겨우 뱉었다. 보트가 뒤집히면서 물을 너무 많이 먹었고 두 다리에 경련까지 났던 것이다. 석범은 달섬에서 해안까지 직선으로 헤엄치지 않고 반원을 그리며 멀리 돌았다. 섬에서 반경 5킬로미터 이내는 안전하다는 정보도 지금은 믿기 힘들었다. 보트를 부순 미지의 힘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방식을 택했다.
“대체 누가 이렇게…….”
음파였을 거예요, 란 민선의 갑작스런 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석범은 운전도 잠시 미룬 채 고민했다.
당연히 뮤텍스라고 추측했는데, 음파라고?
“음파라면, 일부러 보트를 노렸다는 겁니까?”
민선이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목과 가슴 사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미간을 찡그렸다.
“왜요? 아픕니까?”
“여길 좀…… 눌러주실래요. 꽉 막힌 거 같아…….”
석범이 비스듬히 몸을 틀고 허리를 숙였다. 그의 손이 목덜미 아래에 닿는 순간, 민선의 입술이 그의 입술로 다가왔다. 읍, 깜짝 놀란 석범이 허리를 들려 했지만, 그녀의 두 손이 어느새 옆구리를 파고들어 등을 끌어당겼다.
차고 얇은 입술이다.
바다에 빠졌다 나온 탓에 쪼그라든 입술이다.
그러나 그 입술 사이로 뻗어 나온 혀는 갓 구운 고구마처럼 뜨겁다. 그의 입술과 혀를 휘감아 당기는 힘은 동아줄보다 단단하다.
그 뜨거움과 단단함에 끌려 석범은 그녀의 숨결을 받아들였다. 짭조름한 냄새가 코끝으로 흘러들어왔다.
입을 맞추며 그는 생각했다.
민선! 이 여자와 입을 맞추는 상상을 했던가. 바닷가 자동차 안에서 이런 불편한 자세로.
힘으로 밀치면 얼마든지 키스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범은 그녀를 뿌리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특별시를 벗어나던 밤부터 이 순간을 기다린 사람처럼.
이윽고, 입술과 입술이, 혀와 혀가, 숨결과 숨결이 떨어졌다.
“민선 씨! 그러니까 이, 이게…….”
말을 더듬었다. 입술과 혀가 진한 키스 탓에 얼얼했다.
민선이 다시 희미하게 웃었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동안 민선은 다시 눈을 감고 등받이에 머리를 뉜 채 숨을 몰아쉬었다. 수면으로 올라온 팔을 잡아채 끌어올려 안았을 때, 그녀가 뱉은 첫마디가 바로 “답답해요, 가슴이!”였다.
“뮤텍스가 아니라 음파라면, 우리가 보트를 탈 줄 알고 기다렸다는 뜻입니까? 대체 달섬엔 왜 온 거예요? 보트는 또 뭡니까?”
민선이 눈을 뜨지 않고 고개만 운전석으로 돌려 답했다.
“가족 별장이에요. 보셨죠, 바위 아래 외딴집? 쉬고 싶을 땐 가끔 오곤 해요. 보트도 물론 별장에 딸린 거고요.”
석범이 기억을 더듬었다. 부엉이 빌딩 테러 사건 때 노민선의 신분증명서를 훑었던 것이다. 그녀에겐 가족도 별장도 없었다.
“가족 별장이 확실합니까? 민선 씨는 ‘자발적 고아’ 아니었던가요?”
자발적 고아. 부모와의 관계를 스스로 끊은 어린이.
민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떴다.
“혈연으로 묶인 이가 한 명도 없는 건 맞아요. 고아 신세랍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고아는 아니었어요. 14살 때까진 어머니가 절 돌봐주셨죠. 혼인 신고 따윈 처음부터 하지 않으셨대요. 아버진 가끔 집에 다녀가셨고요.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쉐도우 파더(shadow father)’라고 불러요.”
“그럼 별장은……?”
“백퍼센트 쉐도우 파더 거죠. 알부자거든요.”
그래서 노민선과 별장은 서류 상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진 가끔 만나십니까?”
“그건 왜 묻죠?”
“최근에 아버지와 심하게 다툰 적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뮤텍스가 아니라 음파였다면 말입니다. 민선 씨가 이 시간에 달섬에 온 걸 알 만한 사람을 찾아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