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를 위해서는 핵 비확산과 핵 감축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권에 의해 이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핵무기 감축은 회피하면서 새로운 핵보유국의 출현은 저지하는 비확산정책을 펴 왔다. 이에 다른 핵보유국도 감축에 응하지 않다 보니 비확산정책은 결국 핵보유국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결과에 그쳤다. 그리고 1960년대의 프랑스 중국 이스라엘 등 새로운 핵보유국의 대두를 막을 수 없었다.
그 전환기가 될 수 있었던 게 냉전종식이다. 미국과 소련이 과잉 축적한 핵무기 감축을 다른 핵보유국의 감축과 연결해 핵군축과 비확산을 묶을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핵 감축에는 찬성하면서도 자국 핵을 줄이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빌 클린턴 정권 초기에는 핵 감축과 비확산을 묶은 정책이 좌절했고, 뒤이은 조지 W 부시 정권에서는 핵 비확산에 무관심했다. 그동안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실험을 단행했고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이 진행됐다.
오바마 정권의 핵 정책은 냉전 종식기에 실현해야 했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솔선해 핵 감축의 주도권을 잡고 세계적인 핵 관리의 강화를 통해 비확산을 확실히 하려는 시도다. 올해 말 만료되는 제1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Ⅰ)의 개정을 기해 러시아와 장기적 핵 감축 교섭을 하고 러시아의 핵 관리에 미국이 깊이 관여하면서 영국 중국 이란까지도 끌어들이려는 구상이다. 이란과 시리아, 나아가 중동의 테러조직이 핵무기를 손에 넣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핵보유국도 핵 감축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뛰어난 계획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계획을 진행해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북한의 핵 감축을 실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계와 반발도 피할 수 없다. 우선 중국을 보자. 5000기 이상의 핵탄두를 가진 미국이나 러시아의 10%도 안 되는 핵탄두를 보유한 중국은 양국이 핵을 감축하지 않는 한 군축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으로선 고가의 차세대 원자력 잠수함 개발 등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핵 감축에 협력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양국이 힘을 합쳐 중국의 힘을 깎아내리려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도 품을 것이다. 미-러 양국의 핵 관리체제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은 어떨까. 냉전 종식 후 일본의 안전보장의 최대 과제는 극동에서 미국의 군사적 공약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바마 정권의 핵정책은 핵우산이 흔들리는 사태나 다름 없다. 북한 핵이 폐기되고 중국이 핵을 감축하는 전망이 없는 한 미국의 핵 감축은 오히려 일본의 안전을 위협한다. 미국의 핵 폐기에 반비례해 일본의 독자적 핵무장 요구는 높아질 수도 있다.
그러면 무엇이 가능한가. 일본과 한국, 발달한 경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은 두 나라가 주도권을 갖고 동아시아의 핵 감축을 호소하자고 제안한다. 양국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지해 왔지만, 핵에 의지하지 않는 평화가 실현된다면 그 편이 안전보장에 있어서 좀 더 확실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더욱 강하게 핵 폐기를 요구하고,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을 명확히 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미국 러시아 중국의 핵 감축과 묶어 동아시아 비핵화라는 큰 틀에서 다루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이를 준비하지 않으면 동아시아에서 핵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