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인플루엔자(플루)A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했다. 감염자는 증가하고 사망자도 계속 나온다. 다행이라면 당초 우려보다 독성이 낮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성분이 유전정보전달물질(RNA)인가 유전자(DNA)인가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DNA 바이러스로는 치사율이 높고 수천 년 전 이집트 파라오 시대에도 기록된 천연두 바이러스, 우리가 피곤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있다. RNA를 게놈 성분으로 갖는 바이러스에는 지난 40여 년간 신 변종으로 등장해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종류가 많다. 우리 귀에 익숙한 에볼라, 에이즈, 조류인플루엔자 사스, 미국형 유행성출혈열을 유발한 신놈브레, 말레이시아에서 뇌염으로 수백 명을 숨지게 만든 니파 바이러스가 이에 속한다. 이번에 나온 변종 플루는 또 뭘까.
RNA를 게놈으로 갖는 상당수의 바이러스는 유전정보인 게놈을 복제할 때 실수, 즉 돌연변이가 많이 생긴다. 그 빈도가 아주 높아 DNA를 게놈으로 가지는 바이러스보다 10만에서 100만 배 이상 돌연변이가 많이 발생한다. 고등동물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새끼는 사산이 되거나 태어나더라도 문제점을 안고 살아간다.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돌연변이를 갖고 태어난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더는 증식이 불가능하여 소멸된다. 극소수는 더욱 뛰어난 능력이 생겨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
새로 생긴 변종 바이러스는 생존 능력이 우수하여 다른 종을 압도하고 집단을 장악한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핵심이론인 자연도태, 적자생존이 가장 적나라하게 적용되는 경우의 하나이다. 플루 바이러스는 두 가지 방법으로 변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나는 위와 같이 유전정보의 미세 부분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생기는 ‘작은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게놈의 큰 부분이 통째로 대체되는 ‘대변혁’이다.
문제가 된 A형 플루는 유전정보가 1개 가닥이 아니라 8개의 서로 독립된 가닥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가닥이 가끔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 가닥과 섞여버린다. 예를 들어 돼지 바이러스에 있는 H라는 게놈 가닥의 전체 혹은 일부가 인간 바이러스의 H 가닥과 대체된다. 즉 대부분은 인간 바이러스의 게놈 가닥인데 한 가닥이 돼지의 게놈 가닥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변종은 때로는 맹독성을 갖는데 1918년 당시 50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았던 플루는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번 변종 바이러스는 가히 괴물급이다. 게놈의 3분의 1은 북미 돼지 바이러스에서, 또 다른 3분이 1은 북미 조류 바이러스에서, 6분의 1은 사람에서, 나머지 6분의 1은 유라시아 돼지 쪽에서 왔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플루 바이러스와도 다르다. 캐나다 보건 당국은 감염된 농부가 변종 바이러스를 돼지에 전파했다고 생각된다고 2일 발표했다. 조류, 돼지, 인간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다닐 수 있음을 시사하는 섬뜩한 경우이다.
천연두와 폴리오(소위 소아마비)는 세계보건기구가 해당 바이러스를 지구상에서 완전 퇴치했거나 곧 그리 하겠다고 공언할 정도로 성공한 경우이다. 플루 바이러스도 박멸이 가능할까?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퇴치가 가능했던 바이러스는 모두 인간 이외에는 서식지가 없고 변종이 거의 없었다. 여러 종류의 동물을 감염시키는 데다 돌연변이 빈도가 높고 ‘게놈 섞기’까지 가능한 플루는 사람 간은 물론 사람과 동물 간 감염도 쉬우니 플루와의 전쟁은 충격과 지루함이 뒤섞이는 장기전으로 예상된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