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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더블베이스는 들러리? 편견 깨고 싶었죠”

입력 | 2009-05-14 02:57:00


세계적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서 ‘…비행’ 낸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씨
“자만은 연주자의 가장 큰 敵
평생 음악과 싸우면서 살것”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씨(19·독일 뮌헨음대)는 12일 오후 하품을 하며 인터뷰 자리에 앉았다. 독일에서 전날 귀국한 터였다.

“자만이 연주자에게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사뭇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이면서도 “용돈 달라고 부모님께 투정도 부린다”며 배시시 웃는 이 10대는 최근 클래식 음반사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앨범 ‘더블베이스의 비행(Flight of the Double B)’을 냈다. ‘노란 딱지’로 유명한 이 음반사에서 더블베이스 솔로 앨범이 나온 건 처음이다.

음반사 ‘유니버설뮤직 코리아’의 이용식 차장은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는 더블베이스 독주자가 많지 않았던 데다 다른 악기에 비해 레퍼토리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더블베이스 거장으로 도메니코 드라고네티, 조반니 보테시니, 세르게 쿠세비츠키, 게리 카 등이 꼽히지만 대중에게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성 씨는 다부지게 말했다. 더블베이스가 ‘들러리 악기’라는 편견과 한계를 넘고 싶었다고. 높이 1.6∼1.9m, 무게 20kg의 더블베이스는 가장 낮고 넓은 음역을 연주하는 악기.

“더블베이스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악기라는 인상이 강하죠. 뒤에서만 음을 깔아주는 악기가 아니라 바이올린 같은 하나의 현악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음반 수록곡도 직접 골랐다. 바이올린으로도 연주하기 어렵다는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샹키의 ‘카르멘 주제에 의한 환상곡’ 등을 편곡해 연주했다.

열 살짜리 꼬마에게 처음 더블베이스를 가르쳐줬던 아버지 성영석 씨(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주자)는 CD를 듣고 “좋구나”라는 간단한 평을 남겼다. 어머니 최인자 씨는 음반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여동생 미경 양(16·한국예술종합학교)도 더블베이스를 전공한다.

“아빠가 서울시향에서 더블베이스를 연주한 지가 올해로 25년입니다. 저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더블베이스 소리를 들었대요. 아빠는 음악뿐 아니라 제 인생의 스승이세요.”

그는 13세 때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뒤 선화예중을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조기 입학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방황도 많이 했다. 그만큼 마음도 훌쩍 자랐다는 그는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3월 독일 뮌헨으로 떠났다. “나름 곱게 자랐는데 혼자 밥 해먹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면서 산다”며 웃었다. 매일 연습 끝난 뒤에는 수영을, 토요일 오전에는 축구를 즐기기도 한다. 때로 뮌헨의 아름다운 풍광에 주르르 눈물도 흘린다.

순수 국내파로 2006년 슈페르거, 2007년 쿠세비츠키 국제 더블베이스 콩쿠르에서 연이어 우승했다. 8월 독일 뮌헨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더블베이스 콩쿠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6월 19일에는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독주회도 연다. 훗날엔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고 세계를 다니며 더블베이스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평생 음악과 싸우면서 살 자신이 있어요. 특히 솔로이스트는 외로움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주변의 기대가 힘들 때가 있어요. 오히려 자신감이 사라지게 만드니까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