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배치… 재교육… 연공파괴… 숨가쁜 ‘속도전’
《국가정보원 직원 A 씨는 지난달 말부터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건물로 출근하지 않고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자체 교육기관으로 간다. 1년 교육 대상자로 선발된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이곳에서 주로 안보관 확립에 관한 내용을 교육받는다. 일종의 ‘정신 재무장’이다. 2월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한 뒤 국정원에는 직원들을 재교육하고, 물갈이하고, 재배치하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특히 물갈이 대상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는 게 국정원 직원들의 전언이다. 현 정권의 국정 방향에 맞춰 국정원의 기강을 다잡으려는 원 원장의 개혁 드라이브에 대해 국정원 내부에선 필요성을 공감하면서도 ‘개혁’의 속도에 곤혹스러워 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
일부 간부 해병대서 훈련…“삼청교육 받나” 한숨도
감찰실-인사팀 70% 물갈이…일각선 “TK 편중인사” 불만
○ 국정 방향 맞춰 기강잡기
국정원은 지난주 재외공관에 파견된 해외 파트 인력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공관에 파견된 지 2개월 만에 본부로 다시 불려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한 직원은 “외국에 가서 막 정착하려는 즈음에 다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가족을 현지에 둔 채 혼자 돌아온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그 때문에 국정원에도 ‘기러기 아빠’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인사가 수시로 이뤄져 두 달에 한 번 보직이 바뀐 경우도 꽤 있다”면서 “언제, 어떤 인사가 이뤄질지 몰라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보직을 받지 못한 2∼4급 직원 70여 명은 국정원 자체 교육기관인 정보대학원에서 교육받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에는 해병대에 입소해 낙하산 훈련을 제외한 유격훈련을 받는 과정도 들어 있다. 일부 교육 대상자들은 이를 5공화국 시절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단행된 ‘삼청교육’에 빗대기도 한다. 한 중견 간부는 “전 정권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다는 게 인사 이유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다른 간부는 “18일 예정된 인사에서 ‘삼청교육대’ 대상자가 대폭 늘 것이란 얘기가 있다”면서 “불안한 주말을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 TK 전진 배치 논란
원 원장은 올 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강도 높은 국정원의 개혁’을 다짐했다. 취임 때도 “국정원이 전통적인 틀을 깨고 완전하게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2급이던 비서실장의 직급을 3급으로 낮춘 것이었다.
이어 노무현 정부의 ‘때’를 씻어낼 것이라는 얘기가 내부에 나돌았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의 김만복 전 원장 시절 중용된 인물은 물론 이명박 정부 초대 원장인 김성호 전 원장이 발탁한 인사도 한직으로 밀려난 사례가 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10년 좌파 정권에서 ‘양지’에 있던 직원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국정원 개혁이 어렵다는 게 인사의 취지라고 국정원 직원들은 말한다. 하지만 한 직원은 “‘김만복 사람’ ‘김성호 사람’을 솎아낸다는 취지로 단행된 인사에서 TK(대구 경북) 출신이 발탁되고 PK(부산 경남) 출신은 밀려났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정원 내부 인사와 감찰을 담당하는 감찰실과 인사팀의 경우 기존 인력의 70%가량이 물갈이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 연공서열 파괴한 팀제
국정원 안팎에서는 연공서열을 무시하는 ‘팀제’가 국정원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주성 기획조정실장은 지난해 9월 ‘국-처(단)-단-계’로 구성된 국정원 조직을 ‘팀제’로 바꾸는 조직개편을 했다. 국장 밑의 조직을 모두 팀으로 단일화해 주로 3급이 맡았던 처장이 사라지고, 5급 이상이면 직급과 근속 연수에 관계없이 팀장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인사시스템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은 원 원장 취임 이후 그간 지지부진하던 팀제 개편 작업을 본격화했고 최근엔 완성단계에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인사에선 4급 팀장 밑에서 3급 팀원이 일하는 것은 물론 ‘5급 팀장-2급 팀원’의 파격인사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에선 ‘원세훈식 개혁’에 대해 공감과 반발이 엇갈린다. 따라서 국정원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선 개혁의 방향과 속도에 관해 내부의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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