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장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영혼이 머무는 방
내 머리에 타인의 뇌를 이식하면, 나는 과연 여전히 '나'로 남을 수 있을까? 내가 나인 이유는 나의 뇌 때문일까, 나의 몸 때문일까? 내가 이 질문을 내 뇌로 답할 수 있기나 한 걸까?
엉뚱한 질문을 처음 던진 사람은 데카르트지만, 이것을 증명해 보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중국의 어느 의사였다. 1959년, 그는 개의 머리를 잘라 다른 개의 목 위에 얹는 실험을 감행했고, '한 동안 개가 살아있었다'고 중국 정부는 발표했다. 과연 개의 영혼도 옮겨갔을까?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63년, 신경외과 의사인 로버트 화이트 박사가 똑같은 실험을 원숭이에게 적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원숭이의 머리를 잘라 다른 원숭이의 목 위에 얹고 붙이는 수술을 시도한 것이다. 화이트 박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원숭이는 한 동안 냄새도 맡고, 소리에 반응하기도 했으며, 맛을 보거나 주변을 둘러보는 감각능력이 살아있었다. 그러나 수술 장면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다.
1998년 4월 28일, 로버트 화이트 박사는 퍼포먼스 수술을 감행했다. 원숭이 두 마리의 머리를 통째로 바꾸는 수술 과정을 직접 비디오로 촬영을 한 후, 한 방송사를 통해 전 세계에 내보낸 것이다. 이 동영상에는 머리를 이식받은 붉은털 원숭이가 의식을 갖고 눈을 깜빡인다.
화이트 박사팀의 1998년 실험은 매우 정교했다. 몸과 머리의 혈관을 서로 연결하고, 금속 죔쇠를 척추와 머리에 부착하여 머리를 몸에 고정시킨 후 인공튜브를 이용해 기관과 식도를 붙였다. 머리와 목 사이의 신경을 남김없이 이을 수는 없었지만, 주요한 기관과 혈관은 최대한 수술을 통해 연결했다. 건강한 몸을 이식 받은 원숭이는 6시간 후 의식을 회복했으며, 시각과 청각은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척수가 연결되지 않아서 새로 얻은 몸을 움직일 순 없었지만.
사실 원숭이 머리이식 수술의 기원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인 의사 조세프 이그나스 기요틴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고안한 사형기구 단두대는, 교수대나 할복처럼 고통스런 사형방식을 대체하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살인도구로 개발되었다. '즉사'를 돕는 것이 배려인 시절이었다.
공포정치가 시작되면서, 목을 자르면 과연 죄수가 즉사하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단두대에서 벌어진 일화들에 관한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앙드레 수비랑의 자세한 기록에 의하면, 머리가 잘린 죄수의 입술이 움직이고 눈이 깜빡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머리가 잘린 후에도 순환하던 혈액이 뇌 대사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순간까지 뇌가 수 초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한다. 기요틴은 당시 외과 의사들과 학자들의 인체 연구에 불을 지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나고 30년 후,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출판되었다. 이 소설은 현대 외과 의학이 사실은 프랑스 혁명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시체의 신체 부위별 실험을 통해 발전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제네바의 물리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조각을 모아 인조인간을 만들고 전기적인 자극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이 괴물은 자신을 흉측하게 만든 박사를 원망한다. 그는 결국 충동적으로 난폭한 행동을 일삼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이 와중에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시 괴물에게 목숨을 잃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소설 속에서 머리이식을 최초로 시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