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차를 만나면 마음이 들뜬다.
첫 모금에 만나는 기운은 온화하지만 두 번째 느낌은 냉철하다.
담박한 맛은 경쾌하지만 결코 들뜨지 않는다.
향은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팽주(烹主·차를 끓여 내오는 사람)와 객이 마주 앉은 대청마루를 적시기에는 넉넉하다.
여기에 간간이 웃음을 곁들일 수 있는 화제(話題)와 대숲을 가르는 봄날의 바람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
덖고 말리고 비비기 30년 “차맛, 이제 조금 알것 같아”
■ 초의 스님 제다법 맥잇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지난달 하순, 전남 순천시 인근 한 야산에 차 애호가 몇몇이 모여들었다. 이 가운데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명사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은 산골짜기 중턱에 자리 잡은 한옥 마루에 걸터앉아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여·56)의 차 덖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 소장이 만드는 차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한옥 뒤편에는 대나무 숲이 어우러진 차밭이 펼쳐져 있었다. 차밭이라고 하면 흔히 ‘오와 열’을 맞춘 일본 원산의 ‘야부키타 종’ 차밭이 떠오르지만, 이 차밭은 여느 관목 숲과 큰 차이가 없는 모양새다. 삐죽삐죽 솟은 대나무 사이로 한국 자생종 야생 차나무들이 잡목, 잡초와 함께 어울려 자라고 있었다. 1만3000m²(약 3900평) 정도 면적에 펼쳐진 이 차 밭은 옛 스님들이 선차(禪茶)를 만들기 위해 처음 심었던 것이 계속 번식해 남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덖고 비비고 덖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이날은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차를 만들어온 박 소장이 올해 첫 차를 만든 날이다. 오후 늦게 한옥 뒤편 아궁이에 불이 들어갔다. 적당히 달궈진 가마솥 앞에 자리 잡은 박 소장이 수확한 찻잎을 솥에 쏟은 뒤 능숙하게 대나무 솔을 움직여 뒤적였다. 뜨거운 불로 차를 볶아 수분을 빼내는 것을 ‘덖는다’고 표현한다. ‘초벌 덖기’를 마친 찻잎은 멍석에 펼쳐 잠시 식힌 다음 일일이 손으로 비벼준다. 비비는 과정에서 찻잎의 모양이 갖춰진다. 차가 물에 잘 우러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찻잎을 다시 솥에 넣고 덖는다. ‘재벌 덖기’는 초벌 덖기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차의 수분이 완전히 마르고 향이 나타날 때까지 불의 온도를 조절해 가면서 손을 놀려야 한다. 덖는 시간이나 과정은 만드는 사람마다 다르다. 차를 만드는 사람들 가운데는 덖기를 몇 차례 반복해야 한다는 이도 있다. 박 소장의 제다(製茶)는 단 두 차례 덖기로 끝난다. 그래서 그의 차에서는 두 번째 덖기가 중요하다. 박 소장은 “차 덖는 방법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감으로 터득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차를 만든 지 30년이 됐지만 지난해에야 비로소 “이제 차 만드는 법과 차 맛을 조금 알 것 같다”라고 말한 그다.
○ 고수와 명창 같은 아궁이 불 조절 호흡
좋은 차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찻잎이나 덖고 비비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적당한 화력도 중요하다. 아궁이의 불 조절을 맡은 촌로(村老)는 박 소장과 20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이다. 박 소장이 “불이 약하다”고 말하면 노인은 나무 한 도막을 아궁이에 던져 넣고, “뜨겁다”고 말하면 장작 조각으로 구멍을 살짝 막는다. 일하는 품새가 마치 고수(鼓手)와 명창(名唱) 같다. 차향이 무르익어 제자리를 찾았다 싶을 즈음 박 소장이 차를 긁어 소쿠리에 옮겨 담았다.
박 소장의 제다법은 한국 차의 중흥조로 불리는 초의 스님(1786∼1866)의 맥을 잇고 있다. ‘동다송’의 저자인 초의 스님의 차는 추사 김정희 등이 애호하던 명품으로 기록돼 있다. 한학을 배운 박 소장은 1979년 전남 해남 대흥사 주지였던 응송(應松·속명 박영희·1893∼1990) 스님의 장서를 정리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고 ‘차 제자’가 됐다. 응송은 초의의 법손(法孫)으로 대흥사에서 제다법을 배우고 연구한 인물이다. 응송 스님 타계 이후에도 차 연구를 계속해온 박 소장은 2000년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를 세우고 우리 전통차와 중국, 일본의 차 문화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
○ “차는 와인보다 맛과 향의 변화가 다양한 음료”
차밭이어서 다인들 사이에서 당연히 차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최근 한 지방자치단체가 후원한 차 관련 다큐멘터리도 화제로 등장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조선 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마신 ‘작설차’는 녹차가 아니라 찻잎을 발효해 만든 일종의 홍차(또는 황차)”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초의 스님의 ‘동다송’에 나온 ‘칠불선원 스님들이 찻잎을 햇볕에 말려 만드는데 그 색과 맛이 붉고 쓰다’는 구절에 근거한 주장이다.
박 소장은 “영상물 내용에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다송의 그 다음 구절은 붉고 쓴 차에 대해 ‘천하의 좋은 차를 속된 솜씨로 버렸다’는 탄식”이라며 “초의 스님이 칠불선원 스님들의 무지를 질타한 내용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발효차가 우리 차의 한 지류(支流)일지는 모르겠지만 전통차의 주류(主流)는 아니라고 본다”며 “덖고 말리고 비비는 것이 우리 선조들이 해온 전통 제다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마침내 차가 끓어 나왔다. 찻잔을 받아든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미지근한 물에 우려야 떫은맛이 사라지는 ‘일본식 녹차’와 달리 우리 녹차는 뜨거운 물에 우려도 떫지 않다. 신선하지만 풋내가 없다. 부드러우면서도 옹골찬 속내를 지녔다.
박 소장의 차는 많이 만들지도 않지만 돈을 받고 팔지도 않는 탓에 구하기 어렵다. ‘동춘차 후원회’의 도움을 받아 차를 만들고 후원회원들에게 조금씩 나눠줄 따름이다. 아직 대량으로 만들기엔 여력이 부족한 것이 박 소장이 가진 아쉬움이다. 그는 “우리 차는 재배 지역과 덖는 방법, 물의 종류, 심지어 다구(茶具)에 따라서도 맛과 향이 바뀌는 오묘한 음료”라며 “맛에 관한 한 서양의 와인보다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우리 차의 참맛이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동춘 씨는…:
1953년 충북 진천군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 초 청명 임창순 선생에게 한학을 사사하고 1970년대 말부터 1990년까지 응송 박영희 스님에게 제다법 등을 배웠다.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에서 한국사상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동국대 대학원 선학(禪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고려와 송의 차 문화’ ‘한국 차 문화의 연구’ ‘대흥사 제다법의 원류’ ‘초의선사의 차풍’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순천=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