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국구(현행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공천 때는 거액을 공천 대가로 바치고 후보직을 얻는 ‘돈 공천’이 횡행했다. 특히 정치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많았던 야당에선 전국구 ‘공천 장사’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현행법상 당원이 납부하는 당비의 한도액은 제한돼 있지 않지만, 정당이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따라서 공천헌금 성격의 특별당비는 불법이다.
▷대법원은 14일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와 김노식 양정례 의원에게 ‘공천헌금’을 명문으로 금지한 공직선거법 47조의2 규정을 적용해 유죄를 확정했다. 지난해 2월 신설된 이 조항은 ‘누구든 정당이 특정인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일과 관련해 금품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주고받거나 약속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때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위해 거액을 바치면서도 형식상 ‘당원으로서 당비 납부 의무를 다한 것일 뿐’이라며 발뺌할 수 있는 소지를 원천봉쇄한 것이다.
▷서 대표는 18대 총선 과정에서 김 씨와 양 씨 측에 비례대표 공천을 약속하고 32억1000만 원의 ‘공천헌금’을 당에 내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비례대표인 이들 3명에게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량(벌금 100만 원 또는 금고 이상)이 확정됨으로써 국회 재적의원은 299명에서 296명으로 줄게 됐다. 선거관련 범죄로 비례대표 의원의 당선이 무효가 되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다른 사람은 의원직을 승계할 수 없다.
▷항간에선 이들 세 사람이 대법원 판결 전에 사퇴해 ‘사퇴나 탈당에 따른 의원직 승계’ 형식으로 친박연대의 차(次)순위 비례대표 후보들에게 의원직을 물려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서 대표 등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며 사퇴나 탈당을 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금배지의 인계가 불가능해졌다. 금배지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차순위 후보들이나 한 석이 아쉬운 친박연대로서는 서 대표 등의 ‘버티기’가 야속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버티기는 불법으로 얼룩진 국회의원 자리에 지급될 혈세를 한 푼이라도 줄일 수 있게 해주었다. 타락한 정치를 보며 국민은 이런 것에서나 위안을 받아야 하나.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