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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기에 더욱 빛나는 연극-장석조네 사람들

입력 | 2009-05-15 19:16:00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이하 장석조)’은 조금은, 아니 어쩌면 꽤나 불친절한 작품일지 모른다. 지난 1월 겨울잠 프로젝트 ‘사람이었네’에서 첫 선을 보였던 이 연극은 장장 3시간이 넘는 공연시간으로 관객의 기를 바짝 죽여 놓았다.

게다가 대학로에서도 열악하기로 소문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의 공연이라니! 관객들로선 여타 안락한 시설에서의 6시간과 같은 고통을 느꼈을 법하다.

‘장석조’는 13일부터 6월 14일까지 한 달간 대학로 연우소극장 무대에 다시 오른다. 지난번에 비해 극장환경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등받이 없는 소극장의 어둠 속에 앉아 3시간 이상 무대를 주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석조’는 꼭 봐야 할 기대작 중 하나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왕이면 허름한 장소에서 봐주어야 할 작품이다.

빈대떡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종로 피맛골(지금은 그리운 이름이 되어버렸지만)의 허름한 술집에서 막걸리와 마셔줘야 제 맛이 난다. 청담동 양식당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며 먹는 빈대떡은 상상하기도 싫다.

‘자전거도둑’의 작가 김소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석조’는 3시간 내내 사투리가 폭포수처럼 퍼부어지는 작품이다. 배경은 1970년대의 미아리. 함경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이 방언으로 들려주는 ‘한 지붕, 아홉 가구’의 이야기다.

지지리도 못 사는 이야기지만 결코 추레하지 않다. 극단 드림플레이의 배우 15명이 마술처럼 펼쳐 보이는 도시빈민들의 애환과 사연들에선 쫀득쫀득한 감칠맛이 난다. 동 시대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아련한 추억’이란 덤을 푸짐하게 담을 수도 있겠다.

1963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34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던 작가 김소진은 자신의 마지막 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에서 “미아리 산동네는 여태껏 나를 지탱해왔던 기억, 그 기억을 지탱해 온 육체”라고 고백했다.

문학평론가 진정석의 표현에 따르면 ‘김소진이 미아리를 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미아리가 그의 손을 빌려 스스로를 썼다’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석조’는 극단 드림플레이의 대표이자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재엽의 손으로 빚어졌다. 스스로 “김소진은 내게 진정성이 있는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준 살아있는 우상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김소진의 열렬한 추종자이다. 굳이 비슷한 표현을 써 보자면 ‘김재엽이 장석조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장석조가 김재엽을 통해 스스로를 무대에 올렸다’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편한 연극 ‘장석조’는 불편하기에 더 없이 소중한 작품이다. 진짜배기 연극광이라면 놓쳐선 어쩐지 미안해질 것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끝으로 한 가지. 공연 중간에 10분간의 휴식시간이 있다. 3시간 10분이라는 러닝타임에 너무 겁먹지 마시길. 오히려 3시간이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듯 소모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5월13일~6월14일|대학로 연우소극장|예매 1544-1555

티켓 2만5천원(청소년 1만5천원)

※ 신분증 주소지가 ‘서울시 성북구 길음동’인 관객은 본인에 한해 50% 할인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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