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내전/앤터니 비버 지음·김원중 옮김/832쪽·3만6000원·교양인
《1937년 4월 26일 오후 4시 반,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유서 깊은 도시 게르니카에 공습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독일 콘도르 군단의 폭격기 한 대가 도시 상공에 나타나 중심가에 폭탄을 떨어뜨리고는 이내 사라졌다. 15분쯤 후에는 완전히 대형을 갖춘 비행대대가 날아오더니 수많은 폭탄을 떨어뜨렸다. 사람들은 도시 주변 들판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전투기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병원에서 나온 수녀들과 가축들까지 쫓아가면서 총을 쏘고 폭탄을 떨어뜨렸다.》
1936∼1939년 스페인 내전 기간에 일어난 민간인 학살 가운데 가장 참혹했던 사건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 사실을 그림으로 그려 세계인들에게 만행을 고발했다. 스페인 내전에는 피카소를 비롯해 유난히 많은 지식인이 개입했다.
대부분은 공화 정부 편이었다. 앙드레 말로, 존 콘퍼드 같은 작가들은 직접 참전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조지 오웰, 파블로 네루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폴 엘뤼아르 등은 스페인에서 내전의 참상을 글로 고발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스페인 내전은 이런 주변의 관심사가 보여 주듯 내전인 동시에 국제적 성격을 지닌 전쟁이었다. 또 20세기 초 모든 이데올로기가 충돌한 격전장이었다. 자유민주주의자, 왕당파,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이 총집결했으며 지주와 농민의 갈등, 중앙집권주의와 지역자치주의의 대립, 권위주의와 자유주의의 갈등이 빚어졌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전쟁 이후 세계 질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종전 70주년인 올해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스페인 내전의 권위자로 꼽히는 영국의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가 비밀이 해제된 소련의 고문서, 스페인에서 복무한 독일군 장교들의 전쟁 일지 등을 토대로 쓴 것으로, 복잡다단한 스페인 내전의 양상을 정리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스페인 내전은 왕정의 붕괴와 공화정의 수립으로부터 비롯됐다. 급진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이 주축을 이룬 공화 정부가 토지 개혁, 군대 개혁을 실시하면서 이에 반감을 품은 왕당파와 보수적 성향의 군인, 가톨릭교회는 손을 잡고 국민 진영을 형성했다.
국민 진영의 군대는 1936년 쿠데타를 일으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했다. 그러나 신속하게 정권을 탈취하는 데 실패했고, 공화 진영 역시 반란을 제압하지 못함으로써 스페인은 피비린내 나는 장기전에 돌입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외국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게 됐고 이로써 내전은 국제적 대리전으로 확대됐다. 공화 정부는 스탈린에게, 국민 진영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1936년 11월 러시아제 무기가 공화 진영에 등장했고, 1937년 국민 진영의 프랑코는 독일인, 이탈리아인을 포함한 합동참모부를 구성했다.
저자는 “스페인의 전략적 중요성은 물론이고 유럽 각국이 은밀하게 개발해온 무기를 시험해 보려 한 시기가 맞아떨어지면서 내전의 아마추어적 성격은 탈색됐다”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게르니카의 참극이 벌어졌다.
3년에 걸친 전쟁은 국민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국민 진영의 승리 원인을 공화 진영에서 찾은 저자의 해석이 흥미롭다. 그는 “공산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 간의 극단적 적대감이 전쟁 기간 내내 전체 공화군의 전력을 치명적으로 약화시켰고 전쟁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즉 공화 진영의 패배는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한 내분 때문이었다는 결론이다.
실제로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스페인 내 공산당원들이 공화 진영을 장악하면서부터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이 시작됐다. 공산당에 속하지 않은 공화군은 무기를 지급받지 못하는가 하면 심지어 병원 치료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1937년 봄 마드리드에선 공산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경찰과 아나키스트 의용군의 충돌이 점점 격렬해졌고 공화 진영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스페인 내전으로 35만 명이 죽고 50만 명이 외국으로 망명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프랑코 정권의 정치적 탄압으로 20여만 명이 더 희생됐다.
저자는 스페인 내전이 남긴 것들을 정리하면서 “스페인 내전은 무엇보다 인간적 측면에서 가장 잘 기억될 것이다. 즉 신념의 충돌, 잔인성, 관용과 이기심, 외교관들과 장관들의 위선, 이상의 배신과 정치적 책략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진영에서 싸운 사람들의 불굴의 용기와 자기희생 등으로 말이다”라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