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불황의 꽃’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어 불경기일수록 더 많이 팔린다는 뜻에서 기인한 말이다. 특히 자기계발서나 실용서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던 문학서적은 불황 속에서 더욱 빛난다. 단돈 1만∼2만 원이면 며칠 동안 재미와 위안을 얻을 수 있으니 투자 대비 최대 효과가 있어서다. 문학서적 위주의 출판사들이 1분기에 전년 대비 30% 이상의 매출 실적을 올린 점은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밝은 소식은 잠시, 요즘 출판계를 돌아보면 마음이 무겁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책 발행부수는 1년 전보다 19.6% 감소했다. 특히 출판계의 효자로 불리는 아동서적은 52.6%나 감소했다. 2006년 18%에서 2007년 43%까지 성장한 데 비하면 그야말로 급락한 셈이다. 경기가 나빠진 후 창작동화나 신간보다는 학습서나 권장도서 위주로 책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어른은 고단한 삶의 해법을 찾고자 실용서에서 문학서적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아이에게는 도리어 실용서만을 보라고 강요하는 현실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조사한 ‘서울시민의 독서 실태’를 보면 3명 중 1명꼴로 1년간 1권의 책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별에 따라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독서 비율은 낮아졌다. 이 조사에서 10대 청소년 10명 중 1명만(10.8%)이 여가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다고 답했다. TV 시청이나 라디오 청취(31%), 인터넷이나 게임(14%)을 합한 수치에 비하면 참으로 낮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책에 흥미를 갖도록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사회’를 조성하는 일은 우리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문제다. 선진국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캠페인을 벌인다. 하나의 예로 영국은 취침 전 자녀에게 20분씩 책을 읽어주는 ‘잠자리 독서 캠페인’을 벌인다. 이 캠페인은 ‘책의 날’을 전후로 해 한 달간 진행하는데 파급 효과는 상당히 크다.
가정의 달 5월, 우리 주변에는 책을 마음껏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2009 서울국제도서전, 파주출판도시 어린이책잔치 등 온 가족이 책과 함께 알찬 휴일을 보내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책을 기본으로 하는 영화 미술 연극 등 다른 문화콘텐츠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저렴하고 알찬 가족 나들이로 충분하다. 소설가 동화작가 만화가 등 평소 지면으로만 만났던 국내외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멀어서 찾기 힘들다면 동네 공원에 책 한 권 들고 나가 자녀와 함께 읽어도 좋다.
어린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기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자녀의 독서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서로의 책읽기 경험을 나누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성공한 리더는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진 한결같은 독서 습관을 비결로 꼽는다. 일본은 국민의 왕성한 독서력에 힘입어 장기불황을 헤쳐 나갔다. 온 가족이 책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어려울 때일수록 독서만큼 가치 있는 여행은 없다.
백석기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