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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 스릴에… 야경 운치에… 중독됐어요

입력 | 2009-05-16 02:54:00

불빛 바다로 변한 서울을 배경으로 산길을 달린다. 야간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낮에 시간을 내기 힘든 사람들이다. 하지만 별빛 아래에서 즐기는 야간 라이딩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매력을 지녔다. 사진 제공 이정식 사진작가


야간 MTB 라이딩

어둠이 내리면 자전거 끌고, 메고, 들고…

절정의 기쁨을 찾아 밤이슬 축제속으로

고통은 허벅지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종아리 쪽으로 전이되더니 서서히 골반에 연결된 모든 근육을 쥐어짰다. 허리가 뻐근해지고 쥐가 나려는 순간, ‘여자에게 질 수는 없다’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버티어온 내 안의 마초(macho)는 항복을 선언했다. 자전거에서 내려 화끈한 열패감 속에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두고 두 여자는 얄밉도록 리드미컬한 페달링으로 가파른 산길을 쑥쑥 올라 멀어져갔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296m) 야간 MTB 라이딩. 퇴근 후 오후 7시에 봉은사 주차장에 모인 3명의 남자와 2명의 여자 중 무악정까지의 업힐 코스에서 꼴찌는 나였다. “하드테일(hard tail·전륜 완충형)을 풀쇼크(full shock·전후륜 완충형)로 바꾸는 바람에…”라며 애꿎은 자전거를 탓했지만 2년 가까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전거를 멀리한 결과 페달링에 필요한 근육이 약해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안산의 주 능선인 무악정에서 봉수대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 한강 하류에 걸렸던 노을은 봉수대에 올랐을 때 완전히 사그라져 600년 역사를 가진 1000만 인구의 거대 도시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야간 라이딩은 직장인 MTB 라이더들의 ‘애환 어린 특권’이다. 평일 낮엔 당연히 일을 해야 하고 가끔씩은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야 하는 샐러리맨들로서는 그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려면 밤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안산 야간 라이딩에 함께한 박용범(37·신발깔창 제조업), 임경희(37·여·약사), 권영학(44·자전거 판매업), 조미란 씨(44·여)는 모두 생업에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 MTB클럽 팀오를레앙 소속인 이들이 보통사람과 다른 것은 모두 ‘산뽕’을 맞은 ‘환자’라는 점이다. ‘산뽕’이란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산길을 달리는 즐거움에 푹 빠진 것을 지칭하는 자전거 세계의 은어다. 산엔 가고 싶고, 시간은 없으니 자전거 바퀴에 밤이슬을 묻힐 수밖에 없다.

야간 라이딩이 이처럼 애환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특권인 것은 바로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안산은 홍제천을 통해 한강 자전거도로와 직결되는 오프 로드 코스인 데다 능선 어디에서나 서울 야경을 음미할 수 있었다. 도시의 밤은 하늘의 별보다 지상의 별들이 먼저 떴다. 상쾌한 초여름 밤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동안 메트로폴리스는 불야성으로 변했고 야행성 라이더들은 핸들에 달린 라이트를 켰다. 거의 자동차 헤드램프 수준의 라이트와 예비 배터리는 야행성 라이더의 필수품이다.

봉수대에서 무악재 방향으로 난 바윗길을 이른바 ‘스리바’(끌바, 메바, 들바·길이 험해 자전거를 끌고, 메고, 들고 간다는 의미)로 내려오자 도시는 불빛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남산N타워와 63빌딩이 화려하게 빛나는 가운데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에 줄지어 선 자동차 불빛은 불뱀처럼 꾸불거렸다. 3시간여의 야간 라이딩을 마치고 다시 봉은사로 내려가는 길. 고도가 낮아질수록 시야에서 사라지는 야경이 못내 아쉬웠다. 나도 어느새 ‘야간 산뽕’을 맞은 게 틀림없었다.

익스트림스포츠 저널리스트 송철웅 blog.naver.com/timber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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