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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일자리 죽이는 정치

입력 | 2009-05-17 20:17:00


세계 경제위기가 깊어지면서 고용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7년 12월 경기침체 이래 약 57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4월 실업률은 4반세기 만에 최고인 8.9%를 기록했다. 내년에는 선진국의 실업률이 대부분 두 자릿수를 돌파하리라는 전망이 많다. 경제위기가 일자리의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실업자가 100만 명을 향해 치솟다 4월에 다소 주춤했으나 속을 들여다보면 내용이 나쁘다. 6개월짜리 임시직인 공공부문 인턴이 늘어나 고용 악화를 일시적으로 완충했지만 민간 부문의 고용 창출력이 약화하면서 신규 취업자 수가 작년 12월부터 연속 5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계약 및 파견사원, 실업자, 취업준비자 같은 프리터족(族)이 478만 명에 이른다. 한계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 고용사정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4·29 재·보선에서 5 대 0 참패를 당한 것은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재·보선 전문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백전백승하던 정당이 영호남은 그렇다 치고 수도권인 인천 부평을 국회의원 선거와 시흥시장 선거를 민주당에 내주었다. 공천 잘못으로만 돌리는 해석은 좁은 시각일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일자리가 없는 백수들의 불만은 어느 나라에서나 전통적으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고용 늘려 불만세력 확산 막아야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실업률이 높아져 가다가는 노무현식 좌파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비록 지금 야당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하다고 해서 방심하다가는 5년 뒤 다시 정권을 내놓지 말라는 법이 없다.

경제 불황과 높은 실업률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인 극단주의를 배태하고 때론 사회 격변을 몰고 왔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공산당 일당(一黨) 독재가 탄탄한 것 같은 중국도 고(高)실업에 흔들리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도시에 사는 고학력자의 실직 증가로 사회적 동요가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말에는 민노총이 주도하는 폭력시위가 대전 시가지를 흔들어 놓았다. 화물연대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사회 불만세력이 결집하는 양상인데도 우리 정치권은 심각함을 깨닫지 못한 듯하다. 한나라당은 2년 전 경선의 후유증인지, 차기 경선 전초전인지 구분이 어려운 당내 투쟁에 영일이 없다. 민주당은 반(反)기업 세력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며 성장속도가 빠른 산업에서 일자리 창출을 방해하는 양상이다.

세계적으로 제조업에서 일자리 창출은 한계에 부닥쳤다. 실직자들은 낡은 직업에 대한 미련을 접고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 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힐다 솔리스 미국 노동장관은 자동차산업과 다른 분야의 제조업을 지적하며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현재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이 다시 그 일자리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노동부는 최근 성장속도가 빠른 의료, 기술, 대체에너지 같은 분야로 노동자들을 이직시키기 위한 재훈련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가 제조업에서 날아간 일자리를 메울 수 있는 분야는 교육, 의료, 관광, 미디어 콘텐츠 같은 서비스 부문과 대체에너지 등 녹색산업이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미디어 콘텐츠 산업은 소극적으로 잡아도 일자리 몇만 개가 창출될 것으로 예측된다. 민주당은 선거에서 유불리를 저울질하며 미디어 관계법 반대 명분으로 ‘여론의 독과점’을 내세운다. 채널을 늘리면 지상파의 여론 독과점이 오히려 해소되고,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는 한두 미디어가 여론을 쥐락펴락할 수도 없다.

가구공장을 경영하는 한 기업인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 달 120만 원에 숙식까지 제공하면 150만 원이 나간다”고 말했다. 한 달에 200만 원을 주더라도 고학력 젊은이들은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을 기피한다. 그러나 미디어 콘텐츠 분야는 연봉 2000만 원에도 젊은이들의 취업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미디어와 대체에너지 새 일자리

방송개혁시민연대에 따르면 MBC는 평균 연봉이 8800만 원으로 국내 근로자 평균 연봉의 2.5배다. KBS는 산꼭대기 송신소에도 억대 봉급자가 수두룩하다. MBC의 미디어 관계법 반대는 방송시장 신규 진입을 틀어막아 자기들만 억대 봉급을 계속 받겠다는 배짱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민주당은 기존 방송사의 기득권을 지켜주느라 한류(韓流)산업의 일자리 창출과 미디어 산업의 일자리 나누기를 방해하는 셈이다.

세계 모든 나라의 정치권이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판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