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일각서 통합론 솔솔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과 일해재단 후신인 세종연구소를 통합해 ‘한국판 헤리티지재단’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재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구상은 전경련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줄곧 주장해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헤리티지재단은 자유기업 가치를 옹호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주의 싱크탱크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과 한경연, 일부 대기업에서 “세종연구소의 외교안보, 한경연의 경제 분야가 결합하면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 겸 ‘인재 저수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종합 연구재단을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세종연구소의 설립 재원은 1980년대 초반 전두환 정부 때 대기업들에서 돈을 걷어 마련한 것”이라며 “이 연구소의 원래 ‘대주주’는 재계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경연의 한 연구원도 “사실상 기금 이자로만 운영되는 세종연구소가 최근 자금난을 겪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통합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요 그룹 중에는 LG그룹이 이런 움직임을 가장 반기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평소 소신이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사석에서 “내가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나가지 않는 걸 놓고 외환위기 때 ‘반도체 빅딜’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기업의 이익단체 역할에 치중하는 전경련의 현재 기능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평소 “전경련을 헤리티지재단 같은 중립적인 재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 온 구 회장은 전경련이 이렇게 변신하면 종종 정치 바람을 타는 부작용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판 헤리티지재단’이 탄생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재계 관계자들은 “먼저 전경련 회장단이 일종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발상의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추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만큼 전경련의 기능이 변화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종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운영난 때문에 이사회에서 연구소의 진로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경연과의 통합이 우선순위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