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향 차로 점거 행진16일 정부대전청사 남문광장에서 화물연대 조합원 등 7000여 명이 파업 결의 집회를 마친 뒤 도로를 점거한 채 대한통운 대전지사 방향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작년엔 유가 급등따른 ‘생계형 요구’로 정부도 공감했지만…
화물연대, 합법노조 인정 못받아
정부 “명분없는 불법 집단행동” 법과 원칙따라 엄정 대처키로
작년 1주일간 집단 운송거부로 72억5800만 달러 수출입 차질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가 16일 총파업(집단 운송 거부)을 결의함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다시 물류대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총파업이 유가 급등에 따른 이른바 ‘생계형’이었다면 올해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가 전면에 떠오른 것이 다른 점이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처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왜 다시 총파업인가
3일 대전 대덕구 대한통운 인근 텃밭에서 화물연대 광주지부 제1지회장 박종태 씨(38)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씨는 발견되기 3, 4일 전부터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당시 박 씨는 대한통운으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한 개인 택배사업자들과 함께 사측을 규탄하는 집회를 벌이다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었다. 박 씨는 정부와 회사, 노조 현실을 비판하는 유서를 남겼다.
화물연대는 대한통운이 운송 수수료를 인상(건당 30원)하기로 한 합의를 어기고 이에 반발해 운송을 거부한 직원 78명의 계약을 해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통운은 운송료 인상에 합의한 적도 없고 숨진 박 씨가 회사와 관계없는 화물연대 활동가라고 반박하고 있다.
화물연대는 이번 박 씨 죽음을 계기로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3권의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법적으로 화물차주는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다. 화물연대 역시 노동자로 이뤄진 합법적인 노조가 아니다. 정부가 화물연대의 집단행동을 총파업이 아닌 ‘집단 운송 거부’로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총파업 때도 이 문제가 거론됐으나 정부의 강경 방침에 밀려 관철되지 못했다. 올해는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속에 화물차주뿐 아니라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같은 특수고용직 전반에 걸쳐 노동자 인정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총파업은 형식만 같을 뿐 원인이나 과정은 올해와 크게 달랐다. 2008년 물류대란의 원인은 운송료 인상 및 보조금 지급 확대 같은 생계형 요구가 쟁점이었다. 당시 총파업은 고유가의 고통을 겪고 있던 상당수 국민의 공감대를 샀다. 정부도 개별 사업장의 운송료 인상 합의와 별도로 ‘화물운송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해 현재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총파업 당시 합의한 화물운송제도 개선과 표준운임제 도입, 화물차 감차 등의 정책이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가운데 총파업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 물류대란 재연 우려
산업계는 2003년과 2005년, 2008년에 이어 다시 ‘물류대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만약 지난해 같은 파업사태가 되풀이된다면 산업계가 보게 될 피해는 막대하다. 지난해 경유 가격 급등에 따라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화물연대의 파업은 1주일간 이어졌다.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이 기간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수출 36억1800만 달러, 수입 36억4000만 달러 등 총 72억5800만 달러의 수출입 차질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무역협회 하주사무국에 실제 접수된 피해 신고액만 수출 148개 업체 1억230만 달러, 수입 73개 업체 4810만 달러다.
지난해 야적장 자리가 모자라 이틀간 광주공장의 가동을 축소하거나 중단했던 삼성전자나 생산된 자동차를 대리점과 수출항으로 실어 나르지 못해 곤욕을 치렀던 현대·기아자동차 등 관련 대기업들은 화물연대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대한통운은 17일 화물연대의 총파업 결의와 관련해 “이미 한국노총 산하 대한통운 광주지부가 있으므로 현행법상 단체교섭에는 노-노 간의 갈등 문제가 있어 (화물연대 측과) 공식적인 교섭은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개인 택배사업자 각각과의 협의는 문을 열어 놓을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 정부, 원칙대로 대응
이번 총파업 결의에 대해 정부는 “정당성을 상실한 불법 집단행동”이라고 규정했다. 국토부는 육상운송 위기 대응 매뉴얼에 따라 위기 경보 단계를 16일 오후 3시부터 ‘관심’에서 ‘주의’로 올렸다. 운송방해 행위 등을 막기 위해 경찰력 배치부터 군 컨테이너 차량 투입 등 비상수송대책 시행도 준비 중이다.
국토부 측은 “이번 집단 운송 거부는 명분과 실리가 없는 불법적 집단행동”이라며 “국가 경제를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