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흐르는 개성 길북한이 개성공단 관련 법규와 계약 무효를 선언한 지 이틀째인 17일 오후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의 모습. 일요일을 맞아 통행하는 차량도 없이 정적만 감돈다. 파주=연합뉴스
정부 ‘개성공단 北협박’ 대응
北의 일방적 통지에 대북 여론 나빠져
입주기업 외면 어려워…오늘 2차접촉 여부 주목
정부가 북한의 개성공단 계약 무효화 위협과 근로자 장기 억류 사태를 풀기 위해 강온 양면의 대응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근로자를 붙들어 놓은 채 일방적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북한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개성공단 폐쇄도 각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편이다. 다른 한편에선 북한이 원하는 돈과 남한이 원하는 근로자 석방 및 개성공단 제도 개선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고위급 회담을 열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개성공단의 유지 발전을 위해 대화로 문제를 푼다는 방침을 갖고 북측이 18일 회담 제의를 받아들이기를 바라고 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맞대응 필요=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는 쪽은 15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지문 발송 이후 대북 여론이 아주 나빠지고 있는 점을 꼽는다. 한 북한 전문가는 17일 “북한 행태는 강도나 다를 게 없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3월 30일 현대아산 근로자 A 씨를 연행한 것은 명백하게 임금인상 등 ‘돈벌이’ 요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49일 동안 변호인 접견은 물론 가족 면담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인도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도 “북한이 A 씨 문제와 공단의 임금 인상 문제를 엮어 접촉을 시도한 뒤 정부 차원의 인도적 지원 같은 ‘더 큰 떡’을 바라고 벼랑 끝 전술을 펴고 있다”며 “정부와 국민이 ‘개성공단 폐쇄’를 각오하고 한목소리로 맞대응하면 북한이 스스로 협상테이블에 걸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무리하게 임금을 인상할 경우 기업들이 자진 철수할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정부가 남북협력기금 등으로 손실을 보상해준 뒤 공단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위급 회담으로 현안 타결해야=고위급 회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당국 간 대화 상대방인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개성공단 법규 및 계약 재검토’라는 한정된 의제에만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회담 대표를 현재의 국장급에서 차관급 또는 장관급으로 올리고 의제에 A 씨 석방 문제와 ‘3통(통행·통신·통관)’ 해결 및 북한 영토 내 한국인 신변안전 제도화 문제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양측이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은 뒤 북측이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 과거 남북 합의 이행 문제를 논의하는 수순으로 대화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정부가 먼저 회담을 제의했다가 북한이 이를 거부할 경우 보수층의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정부는 또 북한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경우 한계기업에 정부보조금을 줘서라도 공단을 유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17일 “북한이 실제 임금을 크게 올리면 입주기업 중 버티지 못하는 곳이 나올 것”이라면서 “정부는 경제논리대로 되도록(철수하도록) 놔둘지 아니면 보조해주면서 계속 이끌어갈지 검토할 것이며 이는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모든 가능성 대비=주무 부처인 통일부의 간부들은 주말에도 출근해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이종주 부대변인은 16일 브리핑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에도 개성공단을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정부의 기본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개성공단과 관련한 모든 현안을 북측과 대화를 통해 풀어가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측에 제기한 18일 개성공단 2차 접촉의 성사 여부에 관계없이 A 씨 석방 요구를 북측에 다각도로 제기할 방침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