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논평 정치’에서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지난 주말 신영철 대법관 파문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당내 회의와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 “어떤 경우에도 판사의 집단행동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사법부 독립은 제도보다 법관 자신이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사법부 독립은 판사 개인의 신념과 용기, 희생에 의해 지켜져 왔다. 법원장의 간섭이 있더라도 판사는 소신대로 재판을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46세 때인 1981년 대법원판사(요즘의 대법관)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대법관을 두 차례 역임했다. 모든 대법관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많이 내 ‘대쪽 판사’라는 별명도 붙었다. 정치인으로서의 평가와는 별개로 그의 이번 말이 무겁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입에서 진즉 그런 말이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정치인과 현직 대법원장의 위치는 다르지만 ‘회의’ 형식을 빌린 판사들의 집단행동이 일주일째 계속되는데도 대법원장이 먼 산 쳐다보듯 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이 대법원장은 3월에 신 대법관의 ‘재판 관여’ 논란이 처음 제기되자 “판사가 그 정도를 가지고 재판에 영향을 받아서야 되겠는가”라고 기자들 앞에서 반문한 바 있다. 사법부 수장(首長)의 적절한 일침이었다. 그러나 그런 견해는 판사들을 향해 일관성 있게 표명되지 않았다. 이 대법원장이 신 대법관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하고,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권고한 범위 안에서 ‘엄중 경고’를 한 것까지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 등 전국 법원의 상당수 판사가 연일 똑같은 주장과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데 대해 이 대법원장은 침묵만 지키고 있다.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 징계 불(不)회부’ 결정에 대한 집단적 반발의 부당성을 분명하게 지적할 책임이 있다. 고심 끝에 내린 자신의 최종 결정이 정면으로 무시되고 사법부 내부 질서가 무너지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면 사법부는 헌법기관은커녕 조직도 아니다. 국민 눈에는 대법원장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판사들의 ‘사법(司法) 포퓰리즘’에 동조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