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유럽 펀드의 수익률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동유럽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한두 달 전만 해도 동유럽발 금융위기를 걱정했는데 시각이 참으로 빠르게 바뀐 셈이다.
그렇다면 동유럽은 위기를 딛고 이미 회복한 것일까. 회복으로 보이는 착시일 뿐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애당초 위기가 과장된 것이었을까. 필자는 세 질문에 모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먼저 동유럽 위기는 분명한 실체지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예컨대 헝가리의 경우 251억 유로에 이르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이 없었다면 ‘디폴트(국가채무 지불유예)’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헝가리의 포린트화는 30% 이상 급락했고 이어 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기업들의 부도 도미노가 이어졌다. 그 결과 산업생산, 수출, 내구재 주문 등이 모두 10% 이상 급락했으며 2009년 경제성장률도 신흥국으로서는 충격적인 ―6%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다.
위기의 원인은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과 비슷하다. 2000년 초부터 헝가리 민간부문의 외화차입이 급증하고, 고금리를 이용한 재정거래와 차익거래 자금이 헝가리로 유입되면서 외자의 단기화가 진행된 것이다. 헝가리의 가계와 민간 기업들은 금리가 싼 외화자금을 빌려댔고, 그 결과 전체 대출의 60%가 외화표시 대출로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헝가리 정부의 금고사정 탓에 시중에서는 ‘고금리’라는 독약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금리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 정부와 저금리에 해외차입을 선택한 민간, 그리고 헝가리에 무한정 대출을 해준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서유럽 은행의 탐욕. 이 삼박자가 들어맞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헝가리에 대출된 자금은 만기가 연장되지 않고 회수됐고, 헝가리는 부도 위험에 빠져 EU와 IMF에 손을 벌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위기는 분명히 실체였다. 하지만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에 대출해준 서유럽 은행들이 연쇄적인 부도에 빠지게 된다는 ‘동유럽발 은행위기론’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실체를 잘 들여다보면 헝가리를 비롯한 에스토니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등 금융 사정이 심각한 국가에 많은 자금을 대출해준 곳은 오스트리아 은행이었고, 다른 나라 은행들은 동유럽 대출이 전체 대출의 10% 수준에서 제한돼 있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일부 은행이 위기에 빠질 수는 있지만 전 유럽의 은행이 연쇄 위기에 빠지는 상황은 과장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착시일까. 이처럼 위기이긴 한데 과장된 부분들이 제대로 알려지면서 금융시장이 적절하게 교정해나가는 과정을 회복으로 오인한 것이 착시이다. 이를테면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발 경제위기가 과도한 두려움을 낳았지만 EU와 IMF가 적극적인 지원 의사를 나타내면서 시스템 위기의 확산 가능성이 줄어든 것일 뿐 본질이 회복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유럽 펀드의 회복은 급격한 두려움이 가시는 과정에서 과도한 저평가가 해소되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회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경철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