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출장길에 사 온 ‘정년 후의 8만 시간’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정년 후에 남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60세에 정년퇴직을 한다고 가정합시다. 물론 일본이라면 모를까 우리나라에서 교사와 공무원 등을 제외하면 60세에 정년퇴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40대 중반밖에 안 된 업계 후배들이 명예퇴직을 했다면서 직장을 알선해 달라고 찾아올 정도니까요. 어쨌든 60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한국인의 평균수명인 80세까지만 산다고 해도 정년 후의 인생은 20년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인데 현역 시절에는 그 하루가 너무 짧습니다. 일하고 술 마시고 친구 만나고 연애도 하다 보면 하루가 100시간이라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런데 막상 정년퇴직을 하고 나면 그 바쁘던 시간이 잘 가지 않습니다. 잠자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등등을 다 빼더라도 하루에 11시간 정도가 남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얼마 전 어느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을 앞둔 직원 부부를 불러 정년준비 교육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 교육에 참가했던 분이 저에게 들려준 말입니다. 강사가 정년퇴직 후의 하루, 일주일, 한 달 동안의 일과를 예상해서 계획표를 한번 만들어 보라고 하더랍니다.
계획을 어떻게 세울까 고민하던 그는 옆에 앉은 자기 아내는 어떻게 쓰는가를 훔쳐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슈퍼마켓 갔다가 친구모임 갔다가 딸네 집 갔다가….’ 그분의 부인은 이렇게 줄줄 써 내려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본인은 오전 10시까지의 계획을 써놓고 나니 더 쓸 내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도 비슷할 것입니다.
하루 여유시간이 최소 11시간 정도이고 ‘11시간×365일×20년’이면 약 8만 시간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300시간입니다. 따라서 정년 후의 8만 시간은 현역 시절의 35년 일하는 시간과 맞먹는 시간인 셈이죠. 그런데 앞으로 평균수명은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학의 발전까지를 고려하면 30년 정도는 더 산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앞에 예를 든 계산방식으로 생각하면 현역 시절의 50년 정도에 해당하는 기간이 남게 되겠죠. 이렇게 긴 인생 후반을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직장인이 획일적인 노후를 보내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생각으로 각자에게 맞는 인생 후반의 설계를 해야 할 때입니다.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정리=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