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4000원에 주문진 수산시장 다녀오기
#백그라운드 뮤직(BGM) 1. 시장에 가면∼과일도 있고, 생선도 있고!
#BGM 2. 구경 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어느덧 머릿속 ‘시장’은 노래를 흥얼거릴 때나 추억되는 공간이 돼 있었다. 아직 살림을 직접 꾸리지 않는 20대 중반 나이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시장에 대해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도 ‘바닥에 고인 물’, ‘귀찮은 흥정’, ‘불편한 현금 거래’ 정도….
그런 기자에게 ‘시장 투어’를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솔직히 그냥 단순한 시장 관광이었다면 선뜻 주말까지 할애해 가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왕복 교통비에 관광 가이드 비용까지 모두 합쳐 ‘1만4000원’이라는 소리에 한쪽 귀가 솔깃했다. 게다가 오는 길엔 대관령 양떼목장에, 경포대 앞 바닷가까지 들른다는 얘기에 다른 한쪽 귀마저 팔랑거렸다. 세 군데를 다니는 버스 교통비만 해도 5만 원은 족히 넘을 텐데? 좋아, 이번 주말엔 시장 나들이다!
○ 서울 교대역→대관령 양떼목장 (오전 7시∼11시 반)
‘시장투어’는 국내 지방 전통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지원센터에서 버스비용과 보험료 등을 지원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2006년 시작해 올해로 3년째 매년 전국 20개 정도의 시장을 선정하고 인근 유명 관광지 2곳과 연계해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 젊은 고객들까지 지방 전통 시장으로 유입시켜 시장 매출을 늘리고 활성화를 시키는 것이 목적. 올해는 날씨가 추워지기 전인 11월까지 400회가량 운영할 계획이다. 이 중 기자는 대관령 양떼목장과 주문진 수산시장, 경포대로 이어지는 코스를 택했다.
10일 오전 7시 반, 서울 지하철 2, 3호선 환승역인 교대역 1번 출구 앞에 선 전용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청 앞에서 한 차례 먼저 승객들을 태우고 온 버스는 이미 빈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물건 강매하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일랑 접어두라’는 가이드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몸을 실은 채 2시간 반, 버스는 어느덧 대관령 꼭대기를 향하며 저 푸른 초원들을 발아래 뒀다.
날씨가 맑지 않던 이날 대관령 정상에 위치한 ‘양떼목장’에도 안개가 자욱했다. 알프스 목장을 연상시키는 하얀 울타리를 따라 펼쳐진 초원을 따라 20분간 걷자 저 멀리 ‘음매∼’ 하는 양 울음소리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잘 안 보이는 뿌연 안개 속 저 멀리 어느덧 커다란 구름처럼 뭉게뭉게 모여 있는 흰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풀리면서 이달 초부터 방목(放牧)을 시작했다는 양 200여 마리. 원래 온순한 건지, 아니면 관광객들에게 익숙해진 건지 신기하게도 전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피하기는커녕 풀을 뜯어 손으로 주면 날름 받아먹는 모습이 꼭 애완견 같았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기분이 좋은지 즐기듯 가만히 있는다. 양떼와 함께 산책로를 한 바퀴 걷고 내려오면 양들에게 직접 건초를 먹여 볼 수 있는 작은 마구간도 마련돼 있다. 어린이 관광객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아 건초 바구니를 받으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 대관령 양떼 목장→주문진 수산시장 (낮 12시 반∼오후 2시 반)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달린 지 약 50분. 어느덧 창밖으로는 끝도 없이 늘어선 건어물 가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문진 수산시장’,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이미 주말을 맞아 수원, 목포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대형 관광버스 20여 대가 주차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글=대관령·주문진·경포대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관광버스 타고, 장바구니 들고… 가자 ‘시장 투어’
주문진 수산시장은 동해안의 가장 큰 항구 중 하나인 주문진을 마주하고 있다. 1989년 동네 아낙네들이 고무 대야에 횟감과 멍게, 해삼 등을 담아 머리에 이고 행상을 하던 공터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것. 특히 2006년부터 중소기업청이 지원해 시설 현대화 작업에 나서면서 특산물 공동 생산, 온라인 쇼핑몰 운영, 공동 상품권 및 쿠폰 제도 도입 등 각종 첨단 마케팅 전략들이 도입됐다. 올해 7월이면 경치 전망대와 휴게 시설 등 현재 진행 중인 현대화 작업 공사도 모두 끝이 날 예정이다.
주문진 수산시장은 크게 건어물 시장과 회 센터로 구분된다. 회 센터 내 120여 개 상점은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멍게, 해삼, 생선 등을 즉석에서 잡아준다. 비린내가 날 법도 하지만 악취는 전혀 없어 회 센터 한가운데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해도 비리지 않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는 데 정신없는 20대 여대생들부터 휠체어 타고 아들 부부를 따라 나온 할머니까지 상점마다 하나씩 있는 작은 평상들은 나이대를 불문한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시장 다른 한쪽에선 건어물 및 특산물 판매가 한창이다.
“3만5000원에 파는 건데 3만 원에 줄게. 내가 손님한테 무슨 원수를 졌다고 설마 일부러 비싸게 팔겠어∼.”
오징어가 워낙 많이 잡히는 주문진답게 시장 최고 인기 특산품 역시 ‘반건조 오징어’와 ‘불고기 오징어’다. 반건조 오징어는 오징어 성어기인 9∼11월에 잡은 오징어를 80%만 말려 파는 것. 무쳐 먹든 구워 먹든 훨씬 쫄깃하고 감칠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20개들이가 부담스러운 고객들을 위해 낱개로 나눠 팔기도 한다. 불고기 오징어는 상인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손질한 오징어에 특제 소스를 발랐다. 그대로 화롯불에 구워먹으면 ‘오징어 양념 화로구이’가 되고 삼겹살을 곁들이면 ‘오(징어)삼(겹살) 불고기’, 김치와 함께 익히면 ‘오징어 김치두루치기’가 된다. 특히 상인들이 직접 고안한 깔끔하고 세련된 포장 용기에 넣어 판매하는 불고기 오징어는 입소문을 타고 서울 대형마트나 편의점으로도 들어가고 있다. 이곳 상인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이유다. 특제 소스 비법 역시 이곳 상인들을 제외하고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 비밀이다.
○ 주문진수산시장→경포대(오후 3시∼4시 20분)
회로 배를 채우고, 오징어 특산품으로 쇼핑백을 채운 뒤 다시 올라탄 버스는 이날 마지막 코스인 경포대 해수욕장을 향해 30분간 달렸다. 창문을 연 버스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닷가 특유의 반가운 짠 냄새가 오히려 반갑다. 경포대 해변도 주문진 수산시장만큼 최근 들어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2007년부터 경관을 해치던 백사장 인근 모텔이나 횟집을 모두 뒤로 밀어내고 대신 해송을 심었다. 그 덕분에 생긴 2km에 이르는 탁 트인 백사장을 보고 있으면 저 멀리 동남아 휴양지가 부럽지 않다.
경포대의 또 다른 재미는 호수 주변 따라 ‘다(多)인승 자전거’ 타기. 자전거 두 대를 양옆으로 붙이고 위에 지붕을 달아놓은 모양새다. 자전거 가게 주인아저씨 말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해 온 명품 자전거란다. 2인승, 4인승, 6인승별로 있으니 연인이나 가족이 인원수에 맞춰 빌려 타면 된다. 호수를 둘러싸고 자전거 전용 도로가 깔려 있어 자전거 타기에도 편하다. 한 가지만 주의하면 된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사람은 방향 조절 핸들이 있는 왼쪽 자리에 앉지 말 것. 자칫하다간 그대로 호수로 돌진할 위험도 있다. 자전거는 물에 뜨지 않는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전통 재래시장이라고 모두 ‘시장 투어’로 가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매년 전국 1550개 시장 중 관할 지방자치단체 추천을 받아 발전 가능성이 있고 주변 관광지와 연계할 수 있는 20여 군데만 엄선돼 지원을 받는다. 시장경영지원센터에서 올해 선발한 전통 시장은 주문진 수산시장을 포함해 전국 총 19곳. 이번 주말엔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흥정의 재미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참가 신청은 하나투어 홈페이지(www.hanakangsan.com)에서 할 수 있다.
○ 충북 보은재래시장
―서울(5월 31일, 6월 21일, 7월 11일, 7월 26일, 8월 16일, 9월 6일, 10월 31일, 11월 21일) 출발 예정(서울 외 지역 출발 날짜는 하나투어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
―주요 코스: 요즘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옛 장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 최근에는 방문객과 상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명나는 보은 장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주말에 가면 멍석과 짚신을 만드는 이벤트가 펼쳐져 방문객 누구나 짚공예를 체험해볼 수 있다. 고두밥으로 직접 떡메를 쳐서 만드는 떡 체험행사도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다. 보은 지방은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대추 생산지로 유명해 이곳에선 연중 맛 좋은 대추를 구입할 수 있다. 돌아오기 전 ‘보은 순댓국’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면 금상첨화. 인근 관광지로는 1000여 종의 허브를 구경할 수 있는 ‘상수 허브랜드’와 신라 시대에 지어진 속리산 법주사 등이 있다.
○ 전남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
―서울(6월 12일, 7월 3일, 8월 7일, 9월 18일) 출발 예정
―주요 코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은 국내 최초의 주말시장으로, ‘전통 시장은 5일장’이란 편견을 깨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 채소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할머니 장터’가 유명하다. 저렴한 한우 특산품도 잊지 말고 맛보자. 시장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해 인근 식당에서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다. 인근에 위치한 99만1740m²(30여만 평) 규모의 보성다원은 각종 CF, 영화 등의 배경지로 여러 차례 소개되었던 명소. 담양군에서 만든 죽림욕장 죽녹원에서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쏘이는 것도 청량하다.
○ 경북 풍기인삼시장
―서울(5월 24일, 6월 20일, 7월 26일, 8월 15일, 9월 27일, 10월 11일, 10월 24일, 11월 1일, 11월 14일, 11월 22일, 11월 29일)
―주요 코스: 풍기인삼, 영주사과가 대표적 특산품인 풍기인삼시장은 인삼으로 담근 술들과 인삼 재배 모습, 인삼가공제품의 견본들을 시장 입구에서부터 볼 수 있다. 또한 시장을 구경하며 인삼차를 시음할 수 있으며 홍삼시식회도 개최한다. 인삼추어탕, 인삼갈비탕, 인삼튀김 등 인삼을 사용한 각종 요리와 은어 및 봉화송이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열리는 풍기인삼축제에서는 인삼 캐기 체험 현장, 인삼미인선발대회, 인삼요리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실시한다. 인근에 희망계곡, 비로봉, 벽천계곡, 선비촌, 부석사가 위치해 있다.
○ 충남 공주산성시장
―서울(6월 6일, 6월 21일, 7월 11일, 7월 26일, 8월 1일, 8월 16일, 11월 1일)
―주요 코스: 11개 면(面)이 인접해있는 지리적인 이점 덕분에 자연 발생한 100년 전통의 시장. 상설시장이지만 5일장이 동시에 열려 장날에는 인근 주민과 방문객으로 빌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알밤, 오이, 배, 사과가 주요 특산품. 순대와 국밥, 삼계탕이 시장 대표 먹을거리로 꼽힌다. 진로와 협약을 맺어 소주판매 금액 중 100원을 시장 활성화 기금으로 환원한다. 시장 관광을 마친 뒤엔 해발 106m의 나지막한 부소산을 가보자.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켰다는 낙화암을 비롯해 해맞이를 할 수 있는 영일루, 성충과 흥수, 계백으로 대표되는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등 발길 닿는 곳마다 백제 이야기가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