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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기자의 퀵 어시스트]최고령 이창수 “계속 뛰게 되다니…”

입력 | 2009-05-22 02:56:00


벌써 20년이나 된 이야기다. 당시 경희대에서 농구를 하던 그는 1989년 숙소를 무단이탈했다. 20세 철없던 때였다. “운동이 힘들고 견딜 수 없었어요.” 무작정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갔다. 그 시절 일기를 보면 주머니 속에 동전 몇 개밖에 없어 천안역 앞 구멍가게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때웠다는 내용도 나온다. ‘그래도 갈 길은 농구밖에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보름 만에 다시 농구단에 제 발로 들어갔다. 맹장으로 소문난 최부영 감독이 가만있을 리 없었지만 호된 얼차려도 묵묵히 견뎌냈다.

프로농구 최고령 선수 이창수(40) 얘기다. 한때 농구를 관둘까 고민했던 그는 여전히 코트를 지키고 있다. 2008∼2009시즌 종료 후 모비스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LG로부터 영입 의향서를 받아 다음 시즌에도 계속 뛰게 됐다. “이대로 은퇴하기가 너무 아쉬웠어요.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국내 프로농구 최초의 ‘40대 선수’ 시대를 연 이창수는 1996년에는 간염 판정을 받았다. 운동을 쉬며 중국으로 건너가 한약을 구입하고 호주에서 멧돼지 쓸개즙까지 들이켜는 등 온갖 민간요법을 썼다. 다행히 차도가 있어 2년 공백 끝에 1998년 복귀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의 방황에 이어 병마를 극복한 그에게 외국인선수라는 또 다른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센터 포지션인 그가 상대해야 될 육중한 체구의 외국인선수는 벅차기만 했다. 설 자리는 계속 좁아져 갔다.

그래도 그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한 훈련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다. 2년 전 모비스의 통합 우승을 거들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후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천재성과 스타 의식에 사로잡혀 순간의 즐거움에 빠지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거나 못다 핀 꽃이 되는 경우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다음 시즌은 54경기 하나하나가 소중할 것 같아요. 외국인선수도 한 명밖에 못 뛰게 되니 남은 힘을 쏟아 부어야죠.”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