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자연사박물관/리처드 포티 지음·박중서 옮김/448쪽·2만 원·까치
중앙홀에 들어서면 거대한 쥐라기 공룡 디플로도쿠스 골격의 복제품이 관람객을 압도하고새끼를 낳는 도중에 죽은 쥐라기 어룡 같은 신기한 화석이 있는 곳.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이다.
‘생명-40억 년의 비밀’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 등의 저서를 펴냈고 세계적인 자연사학자인 저자는 이곳에서 2006년까지 36년간 일했다. 그는 “박물관의 수준이 한 사회를 평가하는 척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유물만 있다고 박물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박물관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요소라며 전시실 뒤 알려지지 않은 자연사박물관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자연사박물관 직원들은 연구 대상에 따라 별칭이 붙었다. 삼엽충(5억여 년 전에 출현한 절지동물) 연구를 담당한 저자는 삼엽충남(트라일로바이트맨)으로 불렸다. 박쥐 연구자는 박쥐남(배트맨), 벌레 연구자는 벌레남(웜맨)이다.
전시실 너머에 있는 캐비닛에는 온갖 표본과 화석이 보관돼 있다. 시조새인 아르카에오프테릭스, 브라질에서 발굴된 백악기의 물고기 화석 진품 등이 저자가 말하는 “100만 달러짜리 화석”이다. 수십만 년 전의 기후가 어땠는지 알려주는 셀 수 없이 많은 뼛조각도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1867년 5월 24일 채집된 매발톱꽃(꽃잎 뒤쪽의 꿀주머니가 매 발톱처럼 안으로 굽은 모양의 꽃)은 누르스름하게 퇴색했지만 오래전 은퇴한 어느 큐레이터가 쓴 이 식물의 채집 연도는 박물관의 역사를 실감하게 한다.
박물관 동물학부에는 수년 전 정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박물관에 남아 대합조개를 연구하는 존 테일러 씨가 있다. 자연사박물관에는 테일러 씨처럼 새롭고 흥미로운 발견 때문에 박물관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자연사박물관의 비밀에는 관람객이 알지 못하는 유물의 변화도 포함된다. 중앙홀의 디플로도쿠스는 1950년대에는 꼬리가 뒤로 축 늘어져 바닥에 닿을 정도였지만 관람객들이 꼬리 맨 끝에 있는 척추를 훔쳐가자 이제는 꼬리가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게 솟구쳐 있다.
박물관을 주제로 한 책으로는 ‘나는 공부하러 박물관 간다’(효형출판)를 읽을 만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인 저자(이원복)가 1997년 펴낸 책의 개정판(2003년)으로 유물 이름과 설명을 더 쉽게 풀어 썼다. 저자는 ‘함초롬함’ ‘자연스러움’ ‘담백함’ ‘올곧음’ 등 선조의 미학과 생활을 드러내는 67가지 주제어로 박물관 유물을 소개한다. 유명한 ‘청자 상감 구름 학무늬 매병’은 ‘가지런하고 고운 것’이라는 뜻의 함초롬함을 대변한다. 청자에 새겨진 학 무늬가 질서 정연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 연구자인 저자(이병훈)가 문화도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와 건축, 예술에 대해 쓴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한길사)는 러시아박물관을 탐방했다. 러시아박물관에 걸린 예술작품의 특징과 작가의 삶, 작품마다 연상되는 시와 소설, 희곡을 함께 소개한다.
‘박물관의 탄생’(살림)은 근대 서구에서 박물관이 어떻게 형성돼 변화해 왔는지 추적했다. 저자(전진성)는 박물관(博物館)이라는 번역어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박물관은 학예(學藝)를 관장하는 뮤즈 여신의 전당을 지칭하는 그리스어 ‘museion’에서 유래한 영어 ‘museum’의 번역인데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과거의 신성한 지혜와 유산을 일상적 삶의 폐해로부터 보존하는 성소(聖所)”라는 의미가 퇴색하고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을 펼쳐놓은 곳을 의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