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영조 때 영의정에 올랐던 이천보(1698∼1761)는 강직한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임금께 바치는 유서’는 영조를 향한 직언(直言)을 담고 있다. 그는 ‘실낱같은 목숨이 끊어지려 하여 구구하게 한 말씀 아뢰고자 합니다’라고 글을 시작한다. 영조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유서에서 ‘전하께서 기쁨과 노여움이 폭발하게 되면 평정을 잃으시고, 시행과 조치가 격노에 이르면 정책과 법령을 펴나감에 있어서 해를 미칠 우려가 있습니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천보가 병을 얻어 죽었다고 돼 있으나 실제론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 일로 음독 자결을 했다고 전해진다. 죽음 앞에서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생각하는 의로움이 느껴진다. 그의 간언은 요즘 지도자들도 새겨야 할 교훈이다.
▷숙종 시절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1629∼1689)은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정하려는 숙종에 맞섰다가 사약을 받는다. 그가 죽기 직전 아들들에게 남긴 유서는 담담하면서도 간곡한 사연으로 공감을 준다. 김수항은 유서에서 ‘본래 재주와 덕이 없는 사람이 나라의 은총을 과분하게 받고 높은 관직에 올랐으니 스스로 화를 부른 것’이라며 ‘내가 이 지경에 이른 까닭은 높은 자리에 오르면 곧 그만두고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탓하고 있다.
▷그는 아들들에게 ‘벼슬을 해도 높은 자리는 피하고 공손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는 늘 신중하게 생각하라’며 무덤 앞에는 작은 표석 하나만 세워줄 것을 부탁했다. 유서에는 사자(死者)가 세상에 남기고픈 마지막 말이 담긴다. 유서 앞에서 사람들은 겸허해지고 맑아진다. 이천보와 김수항의 유서만 읽어보아도 정치를 잘 펼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는데 요즘 정치인들은 어리석기만 하다.
▷극단적인 죽음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는 단출하다. 그는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크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고 적었다.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달라고도 했다. 그간의 심적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도 담겨 있다. 정치적 공과를 따지기에 앞서 연민의 정이 든다. 유서 앞에 앉는 그 마음으로 정치를 편다면 비극은 없을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