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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 정치문화 개선 계기… 반면교사 삼아야”

입력 | 2009-05-24 02:54:00

봉하마을의 눈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 한 명이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입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캐릭터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호외 읽는 시민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담은 동아일보 호외를 유심히 읽고 있다. 변영욱 기자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이…”
시민단체도 잇따라 애도 성명

■ 충격-비통에 빠진 시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큰 충격과 비통에 빠졌다. 23일 오전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TV나 라디오를 통해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광화문 등 서울 도심을 지나던 시민들은 이날 오후 시내 곳곳에 배달된 동아일보 호외(號外)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놀라움과 함께 자살 기도 등 사망 경위에 큰 관심을 보이는 한편 정확한 사망 경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부 시민들은 “충격적인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혼란이나 어려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회사원 오현정 씨(30·서울 송파구 풍납동)는 “충격이 크다. 비리 의혹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아 ‘많이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석호 씨(34·서울 강북구 수유동)는 “서거 소식을 듣고 정신이 멍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청렴, 개혁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을 지탱한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애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일부 허물에도 시민들의 가슴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도 성명을 내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민주화와 정치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시민들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검찰 책임론을 지적하기도 했다. 검찰의 수사 상황이 일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심리를 압박했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후진적 정치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뒤 검찰에 구속되거나 정치자금이 오가는 현실은 국가 이미지와 경쟁력에도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김정희 씨(54·경기 고양시)는 “정치인 정치자금을 투명화하고 정권이 끝나면 전임 정권에 대해 정치보복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모든 정치인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의 본관인 광주(光州) 노씨(盧氏) 종친회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광주의 노우섭 종친회장(76)은 “지난해 봉하마을에 들러 대제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며 “올해는 심경이 복잡할 것 같아 참석 요청도 못 했는데 갑자기 서거해 너무 애통하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0일 광주 북구 오치동 노씨 문중 선산에서 열린 종친회 삼릉단(三陵壇) 제종회 대제에 참석해 초헌관(初獻官)을 맡아 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날 오후 4시경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차려져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오후 9시경에는 대한문 주변에 모인 조문객이 2000명(경찰 추산)을 넘어섰다. 경찰은 16개 중대 2000여 명의 병력과 전경버스 10여 대를 투입해 오후 5시경부터 대한문 주변을 에워쌌다. 조문객들이 차도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분향소 주변을 버스로 둘러싸자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조계종은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를 비롯해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등 25개 교구 본사에 설치했다. 조계종은 유족과 협의해 조계사에서 노 전 대통령 49재를 봉행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