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에브리데이가 입주할 예정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브라운스톤 아파트 상가(위).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입주할 예정인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인근 아파트 단지(아래).
국내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신세계 이마트가 7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브라운스톤 아파트단지 상가에 330㎡(100평) 규모의 슈퍼마켓(이하 이마트 슈퍼)을 연다. '이마트 에브리데이(Everyday)'라는 간판을 달고 상품 구색도 대형슈퍼마켓(SSM·Super Super Market) 식으로 갖춘다. 매장 실내장식이나 인건비 등을 최소화하는 대신 물건 가격을 크게 낮추는 할인매장 형태로 운영될 전망이다. 이마트는 연내 서울 동작구 대방동, 송파구 가락동 점포도 열기로 했다. 이 밖에 수지타산이 맞는 입지가 나오면 점포 수를 더 늘릴 계획이다.
이마트의 슈퍼 진출에 동네 슈퍼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의 위기감은 크다. 이마트 슈퍼 1호점 예정지인 브라운스톤 근처에도 10 여개의 소규모 점포가 들어서 있다. 이곳은 슈퍼로선 알짜 상권이다. 브라운 스톤 아파트 415세대를 비롯해 바로 옆에는 신동아 리버파크 아파트 2621세대가 있다. 길 건너편에는 상도동 두산위브 아파트 190세대도 공사 중이다.
브라운스톤 인근 주택가에서 A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박정수 씨는 "대기업이 슈퍼에 본격 진출하게 되면 동네 슈퍼마켓은 다 망할 겁니다. 우리도 한계 상황입니다. 불경기라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 데, 우리 같은 서민들은 다 죽으라는 소리예요"라고 하소연했다.
담배 판매권이 있는 박 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담배를 사러온 남자 손님들이 과자나 껌 같은 군것질꺼리도 사가기 때문이다. 대형 점포와 비교하면 상품 구색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작은 슈퍼마켓들은 손님을 끌어 오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고 한다.
인근 아파트단지에 있는 B 슈퍼마켓 사장 김정숙 씨(가명)는 "당연히 매출 타격이 큽니다. 커피 믹스 하나에 플라스틱 그릇 하나씩 끼워 주는 대기업 슈퍼와 커피 믹스만 주는 동네 슈퍼 중 어디에 가겠어요? 게다가 값싼 자체 기획 상품도 만들 테고. 손님들이 그런 미끼 상품을 사러 와서 다른 물건도 살 텐데, 경쟁 자체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라면 한 개라도 전화 주문이 오면 바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싸고 좋은 물건으로 이마트 슈퍼와 경쟁하겠다고 했으나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가게 인근의 대형 슈퍼도 최근 가게를 뺐다. 근처의 또 다른 슈퍼마켓 주인은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서민이 대기업 이기는 거 보셨나요. 그냥 열심히 살 수 밖에요"라며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다.
타격을 받는 당사자들은 인근 슈퍼마켓들만이 아니다. 대기업 슈퍼마켓의 경우 납품업체 본사와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납품 업체의 영업 사원들도 대규모 감원될 처지다.
근처 슈퍼에 L사의 세제와 샴푸를 납품하는 영업사원 김성일 씨는 "이마트 슈퍼가 들어온다는 대방동에 50평 규모의 큰 슈퍼 세 곳이 있는데 벌써 가게를 접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150만 원 월세 내고 카드 수수료 내고 이것저것 떼면 수입이 예전의 절반밖에 안 되는 데, 거기다 대기업 슈퍼가 들어오면 더 타격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슈퍼마켓들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 본사에서는 담당 영업 사원을 정리한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연합회는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모임을 갖고 "살려 달라"며 정부의 대책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는 △대형슈퍼마켓도 대형마트 범주에 포함해 설립 규제를 받게 하고 △영업시간 조정 △판매 품목의 제한 등을 시행해달라는 것. 연합회는 대기업 슈퍼마켓이 하루평균 500만¤1000만 원, 많게는 2000만¤3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을 고려하면 같은 지역 내 슈퍼마켓 20~30개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의 개설과 관련해 입지 및 영업활동 규제를 가하고 있다"며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포털 사이트의 토론 게시판에서도 대기업 슈퍼마켓이 최근 꾸준히 쟁점 토론의 대상이 되는 추세다. 이들 게시판에는 "대기업 슈퍼마켓이 소상공인 서민을 몰락시켜 대형 마트의 임시직 계산원으로 만들려 한다"는 등의 격렬한 의견이 다수다.
이에 대해 이마트 관계자는 "이마트가 동네슈퍼에 진출한다기보다 '작은 이마트'를 연다고 봐달라"고 조심스러워 했다. 그는 "대형 평수는 교통영향 평가를 받아야 하고 건물도 별도로 지어서 오픈해야 하지만 소형 평수는 개점이 쉬운 편이다. 수도권에서 대형 마트를 지을 만한 값싼 부지가 많지 않다는 점도 소형 평수대로 진출하게 된 이유"라고 했다.
신세계의 슈퍼마켓형 사업 진출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이경상 이마트 대표는 올해 초 신년사에서 "전담 사업부문을 통해 소규모 형태의 진출을 가속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그룹 사보 4월호에서 "집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면 이마트가 있는 그런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마트 외에도 기업형 슈퍼마켓은 4월 기준 홈플러스익스프레스 136개, 롯데슈퍼 115개, GS슈퍼마켓 111개가 운영 중이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