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화장실에 갔다가 넘어지거나 침대에서 내려오다 떨어져 뇌를 다쳤다면 환자의 잘못일까 환자를 보호하지 못한 병원의 잘못일까.
심한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50대 박모 씨(경북 안동). 그는 30년 동안 매일 소주 1, 2병을 마셨다. 두 손은 덜덜 떨렸다. 그는 나들이 갔다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안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심박수, 체온, 혈압 등은 정상이었지만 혈소판 수치가 정상인의 10% 정도밖에 안 돼 작은 충격에도 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알코올의존증 50대의 사례
의료진은 발작이 언제 일어날지 몰라 일단 그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침대에 누워 쉬던 박 씨는 다음 날 오후 1시경 침대에서 내려오다 앞으로 넘어지면서 보조테이블에 오른쪽 얼굴을 찧었다. 간호사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줬다. 담당의사에게 보고하지는 않았다. 30분 후 가족이 올라와보니 호흡이 거칠고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고 구토를 했다.
그로부터 2시간쯤 지난 후 담당의사가 왔다. 일상적 회진이었다. 보고는 그때까지 없었다. 박 씨 얼굴의 반창고를 보고 사고 소식을 들은 의사는 급히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고 뇌출혈을 발견하고 응급 개두수술을 했지만 너무 늦었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9개월 후 사망했다. 병원 측은 “간호사들에게 말도 안 하고 화장실에 가려다가 사고를 당했으니 환자의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환자 가족은 “머리를 부딪쳤을 때 바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은 병원의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병원 책임을 물었다. 혈소판 수치가 낮은 박 씨는 작은 충격에도 뇌출혈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얼굴을 부딪쳤을 때 간호사가 담당의사에게 알리지 않아 응급처치를 받을 기회를 놓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 병원 과실은 아니라고 봤다. 박 씨가 스스로 내려오다 사고를 당한 점, 뇌출혈이 쉽게 일어난 것은 원래 있던 알코올의존증에 의한 점 등을 들어 손해배상책임을 40%로 제한했다. 환자 가족은 7000만여 원을 배상받았다.
술에 취해 넘어져 약간의 뇌출혈로 입원했던 환자가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넘어져 상태가 악화된 경우 법원은 병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손해배상책임을 20%로 제한한 사례도 있다. 병원이 요양·지도의무 및 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지만 보호자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사고원인 따라 책임 달라져
병원에서 일어난 사고가 100% 병원 책임이거나 100% 환자 책임인 경우도 있을까. 일괄적으로 말하긴 힘들다. 상황별로 사고 원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환자가 경련이 심한 상태라면 사고를 좀 더 쉽게 예견할 수 있으니 병원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환자가 조용히 있다가 넘어지거나 떨어졌다면 병원 책임이 줄어들 것이다. 어쨌든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어이없는 사고로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