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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싫다” 阿이민자들 ‘국제 귀농’ 붐

입력 | 2009-05-27 02:49:00


불황속 도시생활에 염증
중산층 중심 “고향서 새출발”

TV에서 보던 화려함이 미국의 전부는 아니었다. 기를 쓰고 일해 겨우 살 만한가 했더니 불황이 닥쳐왔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이만하면 됐다 싶었는데 앞으로 삶이 더 나아질지 불투명하기만 하다. 대출금 할부금 걱정, 일에만 파묻힌 생활, 늘어난 뱃살…. ‘아메리칸 드림’은 실속 없는 허상이었다. 미국 댈러스에서 트럭운전을 하던 제임스 오디암보 씨(34)는 올해 초 오랜 결심을 가족들에게 털어놨다. “이제 그만 고향 케냐로 돌아가자.”

미국에서 경기불황으로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면서 미국의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다시 짐을 싸고 있다고 26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일종의 ‘국제적 귀농’이다. 미국의 아프리카 이주자 단체들에 따르면 최근 아프리카 귀향을 위한 문의전화가 급증하고 있다. 물질적 성취는 이뤘지만 각박한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낀 중산층 이민자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아프리카 신흥시장의 경제성장으로 환경이 개선되고 사업기회가 많이 생긴 것도 귀향을 결심하게 하는 요인이다.

어릴 때부터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던 오디암보 씨는 199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뉴욕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를 졸업한 뒤 텍사스로 이사해 장거리 트럭 운전사로 일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다. 고향에선 듣도 보도 못했던 첨단기술은 물론이고 운전면허증을 하루 만에 발급해 주는 정부의 일처리까지 놀라웠다. 꿈을 이루려 정말 열심히 일해 댈러스 외곽에 멋진 아파트도 장만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꿈은 다시 멀어져갔다. 하루 14시간씩 일해도 모기지 대출금, 차량 할부금, 의료보험료 등을 내기가 벅찼다. 밥 먹을 시간이 아까워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운동을 하지 않았더니 뱃살은 갈수록 늘어졌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딸이 취학연령에 가까워지면서 걱정은 하나 더 늘었다. 금속탐지기와 갱들이 있는 학교에 딸을 맡기기 두려웠던 것. 미국 사람들은 올해 초 케냐에서 벌어진 종족 간 유혈사태 소식에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오디암보 씨에게는 학교 교회 등 어디서든 일어나는 미국의 총기사고가 더 두려웠다. 그는 “영화에서는 미국의 한 면만 보여줬다”고 말했다.

케냐 서부 키수무로 옮긴 오디암보 씨의 삶은 몇 달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130kg에 육박하던 몸무게가 90kg으로 줄었다는 것. 1500달러(약 190만 원)짜리 중고 도요타 자동차 하나면 막힘없이 거리를 다닐 수도 있다. 그는 “케냐에서는 차 1대를 4, 5명이 나눠 타지만 미국에서는 사람 수만큼 차가 있어야 한다”며 “나눌 줄 모르고 모든 것에 온통 ‘이건 내 것’이라는 집착이 붙어있다”고 말했다.

고향에선 신용카드도 필요 없다, 모기지도 없다. 오로지 현금만 통한다. 그는 “여기선 하루 5달러(6500원)면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살 때는 매달 800달러를 주택 대출금으로 썼다.

식기 세척기도 필요 없다. 직접 설거지하면 된다. 에어컨을 켜는 대신 창문을 연다. 월마트에서 쇼핑하는 대신 시장에 가서 흥정하는 재미를 느낀다. 늘 ‘살 빼야지’ 타령하던 아내의 원피스도 헐렁해졌다. 그는 “처음 케냐로 돌아왔을 때 이웃들이 ‘왜 아이들은 밖에 나와 놀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며 “미국에서 배운 대로 낯선 사람에게는 말도 걸지 않고 저녁에 바깥출입을 않던 아이들도 이제 웃음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장모 집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는 오디암보 씨는 미국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 달째 사업자등록증이 나오지 않아 속이 타지만 아무런 스트레스도 걱정도 없다”며 “중요한 것은 삶의 형식이 아니라 질”이라며 활짝 웃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