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과감해지는 무대, 관람등급은 제작사 마음대로 결정된다. 상의를 벗은 여배우의 뒷모습이 나오는 연극 ‘불가불가’(위)와 남자 배우의 전라가 등장하는 ‘페르귄트’. 사진 제공 쎄실·LG아트센터
국내 무대가 점점 과감해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자체적으로 등급을 정하는 공연 제작사는 고민에 빠져 있다. 무대의 노출과 등급 딜레마를 살펴본다.
○ 대담해진 무대… 제작사 등급 자체 결정
8월 27일 공연을 앞둔 연극 ‘논쟁’은 여러 면에서 논쟁적이다. 이 공연은 프랑스 작가 마리보의 작품으로 국내 초연이다. 연극은 갓 태어나자마자 외부 세계와 격리돼 생활한 두 쌍의 남녀를 그렸다. 두 남자와 두 여자 배우는 시작부터 중반까지 환한 조명 아래 완전 누드로 무대를 활보한다. 제작사 측은 공연을 앞두고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서울연극제 폐막작이었던 ‘길 떠나는 가족’(13세 이상 관람)에서는 광기 어린 이중섭(정보석)이 팬티를 벗고 성기를 소금으로 씻는다. 좌석에 따라 노출 부위가 달리 보인다. ‘불가불가’(만 7세 이상 관람)에서도 독립군의 아내가 고문받는 장면에서 상반신을 드러낸 채 철봉에 매달린 뒷모습이 나온다. 6월 30일 시작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고등학생 이상 관람)은 사춘기를 겪는 멜키어와 벤들라의 성행위가 신체 일부의 노출과 함께 묘사된다.
현행 공연법에는 영화처럼 관람 등급 규정이 없다. 공연에 대한 각본 심의와 등급 심사는 1999년 이후 사실상 폐지됐다.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서 전체 관람가, 15세, 18세 이상 관람가 등으로 결정되지만 공연의 등급은 제작사의 몫이다.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도 마찬가지. 뮤지컬 칼럼니스트 조용신 씨는 “공연은 영화와 달리 매번 바뀔 수 있고 같은 무대라도 좌석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어 브로드웨이에서도 제작사가 등급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국내 공연의 관람 등급은 3세부터 19세 이상 관람가까지 다양하다. 등급은 예매 사이트에 공지되고 서울연극센터가 매달 발행하는 ‘대학로 문화지도’에도 표시돼 있다. 다만 현장 구매 때는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 대놓고 알릴 수도 무작정 숨길 수도 없는…
제작자들은 공연 등급을 정하며 고민에 빠진다. 공연 내용이 파격적이어서 18세 이상 관람가로 정하면 공연 자체보다 노출 사실만 부각될 수 있기 때문. 자칫 ‘18금(禁)’을 홍보 전략으로 삼는다는 비판도 불거질 수 있다. ‘페르귄트’를 기획한 LG아트센터의 김지인 씨는 “19세 관람가로 정했을 경우 작품보다 얼마나 야할지에만 관심이 모이는 게 부담스러웠다”며 “대중적인 파급효과가 크지 않고 고등학생이라면 예술적으로 받아줄 거라 생각해 17세 이상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노출 수위를 무시하고 낮은 등급을 정하면 항의도 피할 수 없는 일. 30대 아줌마들의 수다를 다룬 뮤지컬 ‘걸스 나잇’은 ‘제2의 맘마미아’라는 홍보문구를 내걸었다가 모녀 관객이 몰려들어 고민에 빠졌다. 부부관계와 관련된 센 성적 농담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공연 제작사 측은 항의를 면하기 위해 공연 전 농담을 섞어 녹음방송을 했다. ‘이 공연은 미성년자 관람불가입니다. 옆에 미성년자가 있으면 관공서에 신고해주시고 그래도 보겠다고 하면 발밑에 깔아주세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