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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화려함보단 따뜻함… 하프 본연의 음색 되찾았죠”

입력 | 2009-05-28 02:59:00

하피스트 곽정 씨의 새 앨범은 소박하고 따스한 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처음엔 진지한 곡들을 생각했지만 어려운 시간을 겪으면서 작고 아기자기한 곡을 들려주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2년여 공백 깨고 앨범 낸 하피스트 곽정 씨 31일 독주회

하피스트 곽정 씨(37)가 2년여의 공백을 깨고 돌아왔다. 그는 이달 초 다섯 번째 하프 앨범 ‘앤젤릭 모멘트(Angelic Moment)’를 냈고, 31일엔 독주회 ‘Thanks to…’를 연다. 이번 앨범과 독주회는 그의 삶과 음악 여정의 전환점이다. 평탄한 길에선 미처 몰랐던 일을 울퉁불퉁한 길에서 아픈 발을 매만지며 깨달을 때가 있다. 그도 그랬다. 12세 때 하프를 시작한 뒤 하프계의 거장 수전 맥도널드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1997년 주빈 메타가 이끄는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협연자로 갈채를 받았고, 전자 하프 연주자로서는 ‘하피스트 K’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러다 순탄한 인생에 걸림돌이 나타났다. 2007년 첫 아이를 가졌지만 임신 8개월째 얼굴의 70%가 마비됐다. 게다가 대상포진이 귀로 번져 청력을 잃고, 아이에게도 장애가 생길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주변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연주자가 못 들으면 어쩌느냐고, 아이를 포기하라고….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귀가 들리지 않거나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해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한 달 만에 기적처럼 그는 원래 얼굴 모습을 찾았고 대상포진도 물러갔다. 아이도 건강했다. 시련은 고통의 기억만 남기지 않았다.

“유독 힘들게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나 자신과 가족, 음악을 깊이 되돌아봤어요. 당연하게 여겼던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곁에 있어 주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에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걸 배웠죠.”

10년 만에 내놓은 클래식 하프 음반에는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슈만이 딸의 7세 생일 선물로 작곡한 ‘어린이를 위한 음악 앨범’, 바흐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쓴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노트’처럼 가족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곡을 골랐다. 31일 연주회도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새 생명이 태어나 ‘우리’가 되는 과정을 주제로 잡았다.

“이전에는 화려한 콘체르토처럼 도드라지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니 하프 본연의 음색으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달콤하고 따뜻한 선율이 역시 좋아요.” 31일 오후 2시 반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2만2000∼5만5000원. 02-780-5054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