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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창규]단오절은 전염병 대비했던 날

입력 | 2009-05-28 02:59:00


오늘(28일)은 음력으로 5월 5일인 단오다. 이날 민간에서 행하던 세시풍습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많은 부분이 중국의 풍습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역사상 인물과 단오를 연결짓는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날의 의미를 액막이에 두었다. 귀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물리치고 다가올 더위에 휘둘리지 않도록 예방하겠다는 의미가 강했다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홀수는 양의 성질을 띠고 있다고 믿었으며 5라는 숫자가 둘 겹치는 날의 오시(午時), 즉 정오를 근방으로 하여 양기가 가장 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때 양기의 도움을 받아 귀신의 접근을 막는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옛 사람들은 귀신이 병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음력으로 5월 5일이면 머지않아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다. 고온다습한 기후는 미생물과 각종 해충이 번성하기 좋은 환경이다. 마침 이쯤이면 모내기를 거의 마무리한 시점이니 비교적 손도 한가하다. 단오절에는 휴식하면서 전염병에 걸리기 쉬운 여름철에 대비한다는 실용적 지혜가 들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남부 지방에서는 추석을 크게 기렸던 반면 북부 지방에서는 단오를 중히 여겼다는 사실을 봐도 이 명절이 따뜻한 계절과 크게 연관됨을 알 수 있다.

단오절에는 창포와 쑥을 많이 이용한다. 창포의 뿌리를 캐고 잘라 비녀처럼 머리에 꽂기도 했고 쑥잎이나 줄기를 호랑이 모양으로 만들어 몸에 지니기도 했다. 두 식물은 고래로 귀신을 쫓는다고 알려졌으니 단오절의 취지에 맞게 십분 활용했던 셈이다. 부적의 용도로만 쓰지는 않았다. 단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세수하는 광경이다. 창포에는 여러 정유성분이 들어 있어 혈액순환을 활발히 해주고 두피의 산화를 방지해 노화를 지연하는 효과가 있다. 적당한 농도의 창포물은 모발의 탈색을 막는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화학약품을 쓰지 않은 두발세정제의 원료로 한때 창포가 많이 언급되었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단오에 즐겨 먹는 음식도 있다. 멥쌀가루에 쑥잎을 넣고 만든 쑥떡과 수리취절편이 있다. 쑥은 전통 음식에 널리 들어가고 한약재로 많이 쓰인다. 쑥에는 무기질과 비타민과 항산화활성이 높은 베타카로틴이 풍부하다. 이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A로 바뀐다. 비타민A는 눈의 세포를 유지하고 빛이 신경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도우므로 야맹증 예방에 필수적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주어 면역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쑥에는 강한 향이 있는데 이 냄새는 치네올이라는 정유성분에서 나온다. 치네올은 소화액 분비를 왕성하게 한다. 쑥향은 벌레를 쫓으므로 불을 붙여 모깃불로도 활용했다. 이처럼 여러 효능이 있는 쑥은 양기가 충만한 단오에 뜯을 때 가장 좋다고 전해진다. 모기가 뇌염과 말라리아의 매개체임을 떠올려본다면 여름철 질병에 대한 또 다른 대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단오절에 조선시대 궁중에서 마셨던 음료인 제호탕이나 또 다른 별식인 앵두화채가 있다. 땀을 식히는 수단이 없는 탓에 이날 부채를 만들어 주고받는 풍습이 자리 잡았다. 산업사회로 진입하고 합리주의가 정착하면서 흉액과 귀신을 물리친다는 단오의 옛 취지는 거의 남지 않았다. 단오절 풍습은 지방자치단체가 때에 맞춰 여는 축제나 행사장에서나 보고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시류가 바뀌어도 그 안에 든 지혜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여름이 유난히 길어진 기후와 전염성 질환의 발현 소식을 보더라도 다가올 더위에 건강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함은 당연하다.

김창규 과학 칼럼니스트·과학소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