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 들겄네’를 표준말로 바꿔보자. ‘어머나 단풍 들겠네.’ 징하고 짠한 맛은 온데간데없어진다. 2006년 4월 한새암 씨 등 각 지역의 사투리를 연구하는 ‘탯말두레’ 회원 5명이 ‘전라도 우리 탯말’이라는 책을 냈다. 사람이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배운 말이 탯말이다. 이들은 사투리를 탯말로 바꿔 발상의 전환을 하자고 제안했다. 표준말이 사무적 공용어라면 탯말은 내가 누구인가를, 자기 역사와 내력을 드러내므로 아끼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규정한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2006년 5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들이 바로 ‘탯말두레’다. 전국의 초중고교생 학부모 학자 등 123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교과서 편찬과 공문서 작성 때 표준어규정 등을 준수하도록 한 것은 지역어 사용을 제한할 뿐 아니라 지역에 대한 차별대우”라며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및 교육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28일 헌법재판소가 3년 만에 이 헌법소원을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의한 그 자체만으론 아무런 법적 효과가 없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금지하진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김종대 이동흡 재판관은 “특정 지역어를 표준어로 정하면 그 지역 외 지역의 방언을 쓰는 사람들은 언어생활에 위축이 생긴다”며 “각 지역어도 지역 주민들의 역사적 문화적 정서적인 창조물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이라는 반대의견을 남겼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이상규 경북대 교수는 ‘한민족 간에 두루 소통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라는 ‘공통어’ 개념으로 국어의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재일 신임 국어원장은 의사소통 기능으로서의 표준어와 민족문화유산으로서의 방언의 가치는 모두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의 결정은 교과서와 공문서에 국한돼 있다. 문학작품이나 일상생활에선 ‘오매 단풍 들겄네’라는 표현으로 언어를 풍요롭게 해도 좋다는 뜻이다. 국어의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서도 서울 표준어의 울타리 밖에 있는 변두리 언어를 수집 보전할 필요가 있다고 국어학자들은 말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