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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나에게로 돌아가는 길

입력 | 2009-05-30 02:58:00

돌담 김철겸, 그림 제공 포털아트


먼 옛날, 세상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집도 땅도 모두 소유자가 있어 경계를 법적으로 구분하지만 그 시절에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져 경계의 개념조차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없어 나와 남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너, 그, 그녀 따위의 별다른 인칭대명사 없이 모두 나로 호칭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오면 “안녕, 나야? 반가워, 나야!”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무리 중의 하나가 먹을 것을 나누는 일에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닫았습니다. 무리에서 빠져나와 자기가 있는 곳으로 넘어오지 말라며 땅에 금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몇 날 몇 밤을 보내며 돌로 담을 쌓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나무와 흙으로 사방 벽을 세워 이 세상 최초의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무리와 자신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무리는 몇 날 몇 밤을 보내며 스스로 고립된 나를 불러내려 했지만 그는 끝내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네모난 방에 갇힌 인물은 자신만 나라고 부르고 방 밖의 무리를 모두 남이라고 불렀습니다. 네모난 방(ㅁ)에 갇힌 ‘나’가 만들어낸 최초의 경계 통칭, 그것이 ‘남’이 됐습니다.

담이 만들어지고 방이 만들어지고 남이 만들어진 이후 무리는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것으로부터 차별을 느끼면 경계를 긋고 담과 방을 만들어 스스로 고립되거나 둘씩 셋씩 부류를 이루어 경계의 영역을 더욱 넓혔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남의 경계 안으로 넘어가 그들을 내쫓고 자신의 경계 영역을 넓히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점점 살벌해지고 사방에는 경계가 생겨 마음 놓고 길을 가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그 무렵, 최초의 경계를 만들고 최초의 방을 만들었던 인물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다시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이미 그가 무리를 떠나던 무렵의 세상이 아니었고 그가 알던 모든 나는 모조리 남이 되어 서로 물고 물리는 끔찍스러운 살육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그는 대지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모든 것이 저의 잘못입니다. 경계도 없고 나와 남의 구분도 없던 태초의 시기로 모든 것을 되돌리게 하소서!”

몇 날 몇 밤 계속된 그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이 혼돈에 빠진 세상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대답했습니다. “태초에 나의 창조에는 남이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너희의 순수한 창조가 아니냐. 너희가 만든 것이니 너희가 되돌려야 하고 너희가 되돌려야 너희에게도 신성이 회복된다. 나와 남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시공에 이르게 될 때까지 우주는 닫히지 않고 너희 인간의 고행도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나와 남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쟁투로 일관되었습니다. 그것을 소멸시키고 모두가 하나 되고 모두가 나로 환원하는 시간은 아직 요원해 보입니다. 무경계의 우주, 우리 모두가 나로 존재하던 시간이 그립습니다.

작가 박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