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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마더’의 ‘봉준호 코드’ 분석

입력 | 2009-06-02 02:59:00


너무 똑똑해져버린 세상… ‘바보’로 사는 것이 최후의 생존법?

히트작에 일관되는 거대폭력 비주류 희생자들… 봉감독 ‘문화권력’은 아이러니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를 보고 봉 감독은 진짜 지독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인의 추억’ ‘괴물’ 같은 히트작을 연달아 낸 감독이라면 얼마나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을까. 하지만 그는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이 영화에 딱 필요한 만큼의 이야기만을 ‘정 떨어질 정도로’ 깔끔하게 하는, 놀라운 압축력과 절제력을 보여준다.

봉 감독은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과시하지 않으며, 대신 치밀하게 직조된 이야기를 통해 관객을 설득한다. 뭐랄까. 그의 감성은 차가운 논리를 가장한다. 논리적 정합성과 수미쌍관, 바늘 끝 같은 디테일로 관객에게 말을 걸지만, 알고 보면 그 속에는 신화적 상징과 원형적 이야기들이 징그럽게 몸을 숨기고 있다.

‘마더’에서도 봉 감독의 장기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연출력은 낚싯줄을 닮았다. 시골 마을에서 여고생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엄마(김혜자)의 아들 도준(원빈)이 범인으로 몰린다는 아주 작은 이야기, 그것에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이야기의 끈을 이어간다. 새로운 단서들은 살짝살짝 곁가지를 뻗고 이런 이야기의 조각들은 다시 원래의 줄기이야기로 수렴된다. 그사이, 정서는 말할 수 없이 증폭된다.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봉 감독의 시각이란 측면에서 볼 때 ‘마더’는 전작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과는 쌍생아 같은 작품이다. 세 작품 모두에서 폭력의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여중생, 여고생이거나 성인 여성이다. 이는 사회 핵심 권력에서 유기된 무기력한 비주류들을 상징한다. ‘괴물’의 주인공인 강두(송강호)와 마찬가지로 ‘마더’의 모자는 힘없는 소시민이다. 그들은 거대한 폭력에 희생당하지만 경찰과 같은 국가권력은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국가권력은 이미 부패의 커넥션과 먹이사슬에 의해 다져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물’의 강두 가족처럼 ‘마더’의 어머니도 억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봉 감독의 영화는 차갑고 이지적이지만 매우 선동적이기도 하다.

이때 봉 감독이 심어놓는 중요한 아이콘이 바로 ‘바보’라는 존재다.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덜 떨어진’ 남자 백광호(박노식)가 국가 폭력의 희생자로 전락하면서 살인범의 누명을 쓰듯, ‘마더’의 ‘모자란’ 아들 도준도 여고생 살인범으로 몰린다. 도준이 자위권을 발동하는 유일한 방편은 자기를 향해 “바보”라고 일컫는 상대에게 무조건적으로 달려드는 하릴없는 짓거리뿐이다(알고 보면, 영화 속에서 이 단어는 무시무시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 봉 감독이 이들 바보의 존재를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건, 이런 광기의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기란 참으로 어려우며 차라리 바보가 되어버리는 편이 소시민이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자위책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사실, 최근 봉 감독의 영화를 마주하다 보면 아이러니를 느낄 때가 있다. 사회적 소수에 대한 애정을 담은 영화 ‘괴물’이 개봉 당시 6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싹쓸이하다시피 확보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꾀한다든지, 사회적 소수자 역할에 천문학적인 개런티를 받는 최고 주류 배우들이 캐스팅된다든지, 또 권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봉 감독 스스로가 영화권력이 되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올바름 여부를 떠나 봉 감독이 한국 영화의 미래를 이끌어갈 가장 중요한 감독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적어도 그는 영화란 매체가 가진 이야기의 소중함과 가치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봉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영화 ‘마더’ 속에는 크고 작은 상징의 장치들이 숨어 있어 이야기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 속 다음 설정들 속엔 어떤 숨은 뜻이 있을지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답은 다음 칼럼 하단에 밝힙니다.

[1]엄마(김혜자)는 한약재 공급상을 하면서 무허가로 침을 놔줍니다. 한약재와 침, 이 속에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영화 말미, 엄마가 자신의 허벅지에 직접 침을 놓는 행위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2]엄마가 아들에게 가르쳐준 ‘저주받을 관자놀이’(생각이 나지 않을 경우 관자놀이에 지압을 하면서 평정심을 되찾으려는 행동) 행위에 숨겨진 뜻은 무엇일까요.

[3]영화 ‘마더’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테마는 무엇일까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