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사를 쓰면 어떡해. 외롭게 야구를 하는데 얼마나 부담이 되겠어.”
한국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에서 일본에 진 다음 날. 귀국 준비를 하던 대표팀 김인식 감독은 기자들을 보자마자 임창용 얘기를 했습니다. 전날 자신이 “거르라는 사인을 보냈는데 임창용이 왜 승부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게 논란이 됐기 때문이죠. 임창용은 실투라고 했지만 일부러 그랬다는 비난이 거셌습니다. 김 감독이 염려한 것도 그래서였지요.
두 달여가 지난 지금. 33세의 임창용은 스승의 걱정을 기우로 만들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1일 현재 개막 후 2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하며 세이브 선두(15세이브)에 올라 있습니다. 최근 두 차례나 스피드건에 구속이 시속 160km를 찍어 열도를 놀라게 했지요. 일본의 야구 평론가 기무라 고이치 씨가 “요즘 가장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임창용의 투구”라고 할 정도입니다.
1995년 데뷔한 임창용은 해외 진출 최소 자격인 7시즌(1995년은 요건 미달)을 채운 2002년부터 해외 무대에 도전했습니다. 그해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 메이저리그 진출을 추진했지만 최고 입찰액이 65만 달러에 그치자 국내에 남았습니다. 2년 뒤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고 다시 도전했지만 이번에도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욕심이 지나쳐 한국 야구를 망신시켰다’는 비난도 들었습니다.
2004년 구원왕에 올랐던 그의 성적은 이듬해부터 추락했습니다. 2005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뒤에는 평범한 투수가 됐습니다. ‘해외 진출은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는 다시 도전했고 지난해 외국인 선수 최저 연봉 수준인 30만 달러를 받고 야쿠르트로 갔습니다. 그리고 “돈보다 야구를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결정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더는 잃을 게 없었던 그는 일본에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무실점 행진은 언젠가 멈추겠지만 3수 만에 꿈을 이룬 임창용의 분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