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월 한국종합무역센터 건설본부 현판식에서 박용학 대농 회장(왼쪽)과 악수하고 있는 남덕우 한국무역협회 회장.
무역센터 건설의 시발
대선 출마제의 정중히 사양하며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역센터” 역설
대통령 재가 얻고 건설계획 박차
당시 무역협회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6만여 평(19만8348m²)의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 2만3000여 평(7만6033m²)은 금진호 상공부 장관의 지시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매입한 것이고 나머지는 협회가 소유하던 종합전시장 터였다. 무역센터 건설을 생각하던 나에게는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정부의 허가를 받는 일이 큰일이었다.
1984년 여름 어느 날, 나는 전두환 대통령의 초청으로 ‘안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는데 3년 후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노태우 장군이 당연히 차기 후보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의외의 말씀이었다. 아마도 대통령은 만일에 대비하여 문민 후보를 물색해 두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대통령이 될 만한 위인이 못 된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며칠이 지나 청와대에서 우리 부부를 만찬에 초청한다는 연락이 왔다. 또다시 출마 이야기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전에 백영훈 박사가 경영하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이 제출한 무역센터 건설에 관한 용역 보고서가 있었기에 급한 대로 그것을 기초로 하여 무역센터 건설계획안을 만들라고 노진식 전무에게 지시했다. 그 문서를 들고 아내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갔다. 예측한 대로 전 대통령은 출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간곡히 사양하고 “제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라고 한 후 가지고 간 차트를 꺼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경제를 자랑하는 한국이 88올림픽 때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것이 무엇이냐고 반문하면서 1988년까지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의 무역센터를 지어놓겠다고 다짐했다. 전 대통령은 나의 설명을 듣고 나더니 무역특계자금을 잡다한 용도에 써버리는 것보다 이 사업에 투자하면 남는 것이 있을 것이라며 찬성을 표시했다.
그 다음 날 관계 장관들을 무역회관으로 초청했다. 신병현 부총리는 나의 친우이자 나의 직전 무역협회 회장이었고, 상공부 장관은 국무총리 당시 나의 비서관을 지낸 사람이며, 김성배 건설부 장관도 잘 아는 사이였다. 대통령과 면담한 경위를 설명하고 그들의 협조를 부탁했다. 그 후 상공부와 무역협회 공동 명의로 ‘한국 종합무역기지 건설기본계획’을 작성해 부총리와 국무총리의 결재를 거쳐 8월 16일 전 대통령의 정식 재가를 얻게 되었다.
협회 임원회를 소집하여 건설계획을 확정했다. 여러 대학 건축과 교수들을 포함하는 설계위원회를 구성하고 설계를 국제경쟁 입찰에 부친 결과 국내 5개사와 일본, 미국 등 외국 3개사가 응모했다. 위원회는 심사 끝에 일본의 일건(日建)설계회사의 설계안을 선정했다. 3년 안에 공사를 끝낼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설계가 끝난 다음 공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를 해가면서 설계를 하는 이른바 패스트트랙 방법을 사용하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최대 관심사는 첫째로 부실공사를 예방하는 것과 둘째로 물자 구매와 각종 계약 과정에서 있을지 모르는 부정과 잡음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었다. 전자를 위해서는 일건설계에 감리를 부탁했다. 그러나 한국의 복잡한 규제와 관행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하기에 기본적인 감리만 하기로 하고 국내의 원도시건축사무소와 정림건축 두 회사와 일부 설계 및 시공 감리계약을 체결했다. 나는 겨울에도 일건설계 책임자와 함께 골조 공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용접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했다.
후자에 관해서는 건설위원회에서 논의한 끝에 무역협회 남상수, 이윤채 두 비상근 부회장이 구매위원회를 맡기로 했다. 남상수 남영산업 회장은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기업가라는 정평이 있었고 이윤채 부회장 또한 임원회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영입한 건설본부장에 대해 불미한 잡음이 들려왔다. 나는 그를 즉각 해임하고 협회의 노진식 전무를 건설본부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기술본부장에는 대형공사 경험이 있는 성기영 씨를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