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간식타임!… 빙수 시킬 사람∼”
과자 빵 떡… “내일 뱃살은 내일 걱정, 너만은 포기못해”
#. 27일 오후 6시 반, 전남 순천시내 모 여고 2학년 교실. ‘외부간식 금지령’이 내려진 후 유일하게 간식이 허용되는 수요일이다. “빙수 시킬 사람 적어∼.” 반장이 일어나 쪽지를 던지며 말했다. 이 반 홍모 양(17)은 팥, 초콜릿, 딸기, 바닐라, 녹차, 포도 맛 중 오늘은 무얼 먹을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녹차 맛 빙수를 고른 홍 양. 맛과 이름을 적은 쪽지를 1000원짜리 한 장과 함께 건넸다. 쪽지는 교실 한 바퀴를 꼼꼼히 돌았다. 쪽지를 받은 반장은 단축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아줌마, (야간자율학습) 1교시 끝나고 팥 5개, 녹차 4, 바닐라, 포도 3개씩 갖다 주세요.” 오후 8시 20분 학교 후문. 아직 녹지 않은 빙수를 들고 서 있는 아줌마와 접선했다. 홍 양은 “간식은 지루한 야자의 활력소”라며 “닭 강정, 피자 등 반 친구들과 같이 먹는 단체 간식 메뉴가 많지만 여름철 지존은 빙수”라고 말했다.
하루 24시간 굶주린 고등학생들. 불타는(?) 학업에 대한 열정만큼 식욕도 함께 타오르는 시기, 그들은 내일은 접히는 뱃살을 걱정할지라도 공부 스트레스 속 잠깐의 휴식이 되어주는 ‘완소(완전 소중하다의 줄임말)’ 간식을 포기할 수 없다.
#. 매점을 내 집처럼
고 2 김모 군(17·서울 광진구 중곡동)은 아침을 학교 매점에서 시작한다. ‘포켓몬’과 ‘케로로’로 계보를 잇는 캐릭터 빵은 ‘간식계의 전설’로 불린다. 인기 비결은 친근하고 귀여운 생김새뿐 아니라 베이커리 빵 못지않은 훌륭한 맛에 있다. 지난 중간고사 기간, 평소보다 30분 정도 이른 7시 20분쯤 학교에 도착한 김 군은 “매점 문이 굳게 닫혀있어 망연자실했다”고 회상했다.
학생들이 매점을 찾는 빈도와 간식을 ‘해치우는’ 속도는 공부 스트레스에 비례한다. 점심 먹기 한 시간 전, 방과 후, 야자 중간 쉬는 시간은 기본. 시험기간엔 수시로 들락날락거린다. 3, 4명이 거둬 모은 5000원으로 과자 5, 6봉지를 펼쳐 놓으면 딱 3분 만에 마무리된다. 김 군은 “학교에 매점이 없거나 점심시간에만 매점 출입을 허용하는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끔찍하다”면서 “음료수 하나, 과자 한 봉지라도 사먹지 않으면 어쩐지 허전하다”고 말했다.
#. 고구마, 떡…. 엄마표 ‘건강’ 간식 인기
고 3에게 생기는 간식의 변화는? ‘엄마표 간식’이 늘었다는 것. 경기도의 한 외국어고 3학년 정모 양(18)은 엄마표 간식의 ‘간접 수혜자’다. 행여나 속이 허전하지 않을까, 급식이 입에 맞지 않아 끼니를 거르지는 않을까 늘 걱정인 친구 어머니가 싸준 제철과일, 샌드위치, 떡, 미숫가루 탄 우유가 시험과 모의고사가 임박할수록 풍성해진다. 친구들과 함께 먹으라며 넉넉히 싸준 정성에 감동, 화학첨가물 없는 건강한 맛에 또 한 번 감동한다.
엄마표 간식도 트렌드가 있다. 정 양은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다이어트와 변비에 좋은 삶은 고구마가 열풍이었다”면서 “요즘엔 떡을 종류별로 사서 냉동실에 얼렸다가 아침에 꺼내오면 쉬는 시간에 먹기 딱 좋게 녹아 인기”라고 말했다.
#. 일주일 간식 스케줄은 생활의 ‘樂’
“저녁 먹어도 금세 배가 고파요.” 고 1 조모 양(16·경기 고양시)은 학원 가기 전 친구들과 함께 간식 스케줄을 짜서 먹으러 다니는 것이 생활의 즐거움이다. 월요일엔 근처 마트에 가서 한 봉지에 990원짜리 빵을 세 봉지 사먹는다. 화요일, 공부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고플 땐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과 바로 옆 도넛 가게에서 도넛을 산다. 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무료 쿠폰은 반드시 챙긴다. 수요일쯤엔 간식의 고전 ‘분식’을 먹어줘야 한다. 학교 근처 ‘불티나’ ‘먹을래 싸갈래’ ‘사오정 떡볶이’ 중 다수의 의견에 따라 분식집을 선정한다. 일인당 2000원이면 떡볶이와 순대, 튀김으로 석식으로 못다 채운 배를 채울 수 있다. 목요일과 금요일엔 학원 스케줄이 바쁘다. 길에서 파는 500원짜리 떡꼬치와 피카추 모양 돈가스, 1000원짜리 와플이나 토스트로 시간을 절약한다. 조 양은 “급식을 양껏 먹고 간식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남자애들 신경 쓰면서 자제하고 2차로 간식을 먹는 친구들이 많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간식 먹는 재미로 학교 다닌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