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전문가들은 올여름이 평년보다 무더운 날씨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아이가 무더위를 식히려고 얼굴에 찬물을 붓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994년 6~8월 평균기온 25.3도 최고
서울 34일 동안 열대야 고통 받아
‘올 최근 10년 중 가장 더운 여름’ 예고
장마 기간이 무더위 수준 좌우할 듯
“올여름은 전반적으로 무더운 날씨를 보이겠다.”
지난달 22일 기상청은 올여름 날씨를 이같이 전망했다. 웬만해선 “평년과 비슷한 수준”임을 강조하던 기상청이 올여름 무더위를 ‘경고’한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각국의 기상 전문가들도 한목소리로 올여름 더위를 예보하고 있다. 4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기상기구(WMO) 동아시아지역 장기예보 전문가 회의’에 모인 16개국 100여 명의 기상 전문가는 “올여름 한국과 일본의 기온은 평년보다 높다”는 공통된 내용의 예측 결과를 내놓았다.
○ 1994년, 그해 여름만큼 뜨거울까?
기상 전문가뿐 아니라 국민 사이에도 1994년은 특별한 해로 기억된다. 더위와 관련된 모든 기록이 1994년 여름에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 6∼8월 평균기온은 25.3도로 사상 최고로 높았다. 최저기온이 25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는 전국적으로 14.9일이나 발생했다. 특히 제주는 44일이나 뜨거운 밤이 계속됐고 서울 34일, 광주 36일, 부산 41일 등 말 그대로 ‘살인더위’가 이어졌다. 서울의 역대 최고기온인 38.4도(1994년 7월 24일)도 이때 기록됐다.
올여름 무더위도 1994년 못지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봄철(3∼5월)의 전국 평균기온은 12.6도로 평년보다 1.1도 높았다. 1973년 이후 1998년 13.4도, 2002년 12.8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월 한 달간 평균기온은 18.2도로 평년의 16.9도보다 1.3도 높았다. 이는 최근 37년간 관측된 수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여름 무더위의 원인은 북태평양고기압의 강세 때문일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 여름날씨를 좌지우지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빠르고 크게 발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994년에도 북태평양고기압이 이상 발달하면서 폭염이 나타났다. 기상청 관계자는 “1994년의 경우 따뜻한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전체를 덮어버릴 정도로 세력이 강했다”며 “올해도 세력은 커지겠지만 그 정도는 아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간 기상업체들도 올여름 날씨가 뜨거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공군기상전대장 출신인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민간업체는 물론이고 대학, 공군 등 많은 기관이 공통적으로 상당히 무더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 센터장은 “1994년의 더위 신기록은 깨기 힘들겠지만 최근 10년 중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 올여름 강수량은 평년 수준과 비슷할 듯
달궈진 땅과 뜨거워진 공기를 식히는 데에는 시원한 빗줄기만 한 것이 없다. 1994년에는 강수량도 유난히 적었다. 당시 6∼8월에 내린 비의 양은 432.6mm. 최근 30년간 여름철 평균 강수량 748.55mm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규모다. 뜨거워진 공기가 식을 사이가 없다 보니 폭염이 이어진 것이다. 다행히 올여름 강수량은 평년 수준과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장마가 일찍 시작될 것으로 보여 장마 기간에 따라 7, 8월 무더위 수준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여름철 장마는 제주가 6월 19일, 남부지방은 22∼23일, 중부지방은 23일쯤에 시작된다.
윤원태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당연한 얘기지만 비가 와서 일사량을 줄여야 기온이 내려가는데 1994년에는 강수량도 유난히 적었다”며 “현재로서는 올여름 평년 수준의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