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나의 삶 나의 길]경제개발의 길목에서

입력 | 2009-06-03 02:57:00

1985년 3월 열린 한국종합무역센터 기공식.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건설된 무역센터는 세계 무역센터 가운데 유일하게 공항터미널을 갖추게 됐다.


무역센터 건설 중 있었던 일

사무동 공사 극동건설 ‘1원 입찰’

호텔-백화점 럭키-현대 갈등 중재

공항터미널은 실무자 설득 애먹어

무역센터를 건설하려면 먼저 약 2000억 원의 건설비용을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문제였다. ‘무역특계자금’과 서울 중구 회현동 무역회관 및 기타 보유 재산을 매각해 충당하고 부족한 부분은 은행 대출을 받아 건설 후 사무실 임대보증금으로 갚기로 했다. 참고로 무역특계자금은 1968년 제11차 수출확대회의 결정과 1968년 12월 27일 무역협회 총회 결의로 일부 수입액의 1%를 징수해 KOTRA 지원과 기타 수출진흥 사업에 쓰기로 한 자금으로, 당시 김정렴 상공부 장관의 주도로 실현될 수 있었다고 한다. 경쟁국인 대만과 홍콩도 같은 방법으로 ‘수출연합진흥비’ 및 ‘무역발전기금’을 각각 설치해 수출진흥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무동 공사 입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설계와 공사를 병행하기 때문에 총공사비를 경쟁입찰에 부칠 수는 없었다. 건설비는 물건비, 인건비, 건설용역비로 구성되는데 물건비와 인건비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건설본부가 사정하기로 하고 건설용역비를 경쟁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이를 코스트플러스피(Cost Plus Fee)방법이라고 한다. 즉, 피(Fee)가 입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현대건설 등 7개 회사가 입찰에 참가했는데 개찰을 하고 보니 극동건설이 단돈 1원을 입찰했다. 나는 날림공사를 연상하여 책상을 치고 화를 냈는데 건설위원회는 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극동건설은 의외로 착실한 공사를 하고 있었고 일건설계 현장책임자에게 물어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후일 극동건설 김용산 회장에게 왜 1원 입찰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첫째는 대형공사의 실적을 쌓기 위해서라고 했다. 둘째는 무역협회는 공사대금을 공정하게 사정하고 신속하게 지급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고 셋째는 중동 등 해외건설에서 쓰던 장비를 들여오면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전시동 신축공사는 대우건설이 맡게 됐다. 호텔 백화점 공항터미널은 민자를 유치하고 협회가 토지를 현물로 출자하기로 했다. 호텔은 럭키개발, 백화점은 현대건설, 그리고 공항터미널은 금호건설에서 맡게 됐는데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때 현대와 럭키가 호텔과 백화점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실무자들이 옥신각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두면 공사가 늦어질 것 같아 나는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과 구평회 럭키금성그룹 부회장을 초청했다. 구 회장이 호텔을 맡겠다고 선수를 치자 정 회장은 “그러면 내가 백화점을 맡지요”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릴 줄은 몰랐다. 인터컨티넨탈이 호텔 경영을 맡게 된 것은 이선기 부회장이 유치한 결과였다. 공항터미널은 당초에는 동양고속이 맡기로 했으나 이 회사의 내부 사정 때문에 금호산업이 맡게 되었다. 공항터미널은 일본의 하코자키(箱崎) 공항터미널을 보고 착상한 것으로 공항터미널에 항공사, 출입국관리국을 유치하자면 교통부, 법무부의 허가가 필요한데 우리 실무자들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다. 무역센터 내에 공항터미널이 있는 곳은 세계에서 오직 한국 무역센터뿐이다.

3개 민자사업을 위해 제각기 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신축공사는 건설본부의 조정과 감독을 받도록 했다. 호텔 기초공사는 현대건설이 담당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기술본부장이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해 왔다. 흙을 파낸 후의 토벽과 지하층 골조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토벽을 더 깎으라고 지시했더니 현대의 현장책임자가 비용이 더 든다며 말을 듣지 않아 정 회장에게 직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 회장을 현장으로 오게 해서 양쪽 이야기를 듣도록 했다. 현장책임자가 토벽을 더 깎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자 기술본부장은 “여보시오, 똑바로 보고하세요”라며 기술적인 문제점을 상세히 설명했다. 정 회장은 “알았습니다” 하고 돌아가더니 즉각적으로 현장책임자를 교체했다. 정 회장은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