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3군본부 이전
고향 떠났던 주민들
“다시 이주하게 해주오”
“신앙과도 같았던 고향이라 상당수가 주변에 흩어져 살면서 돌아갈 날만 손꼽았는데….”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이 고향인 신도안향우회 한상빈 회장(64·대전 중구 유천동)은 요즘 감회가 새롭다. 지난달 21일 남선면이 신도안면으로 바뀌면서 예전의 ‘신도안(新都案)’이란 이름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신도안은 ‘신도안(新都安)’, ‘신도내(新都內)’ 등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신도안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1393년 이곳을 신도읍지로 정하고 대궐 공사까지 진행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예언한 정감록(鄭鑑錄)을 믿는 신흥종교들이 1914년부터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신흥종교의 메카가 됐고 주민들이 이들 종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주민 5500여 명은 1983년 시작된 3군 본부(계룡대) 이전 사업(620사업)으로 고향을 떠났지만 지금도 절반 이상이 인근 대전과 논산, 공주 등에서 산다. 계룡산을 늘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아버지를 비롯해 고향을 떠난 어른들이 고향 이름을 되찾고 꼭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며 “군부대가 있는 신도안 주변에라도 이주단지를 마련해 줄 것을 계룡시에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룡시는 역사성과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신도안’으로 행정 명칭을 바꿔 지역 홍보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이를 계기로 신도안을 역사적인 유적으로 만들어 관광객 유치에도 힘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룡산 및 신도안과 관련한 여러 저서를 펴낸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이길구 경영기획실장은 “현재 역사문화연구원과 계룡시가 신도읍 조성 당시 대궐 터와 주춧돌을 연구해 대궐의 조감도를 재생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신도안 지역의 초중고교 이름(용남)도 신도안으로 바꿔 상징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