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평화봉사단(Peace Corps) 지원자가 부쩍 늘었다. 올해 들어 인터넷을 통한 가입신청자는 2만50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0% 증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공봉사의 가치를 강조하고 평화봉사단을 자주 거론하면서 나타난 ‘오바마 효과’다. 미국 평화봉사단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청년들의 해외봉사를 통해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만들었다. 현재까지 봉사자 19만5000명이 139개국의 농업 교육 환경 보건현장에서 땀을 흘렸다.
▷한국은 1966∼1981년 미국 봉사단 2068명의 도움을 받았다. 아시아에서 필리핀(8300명)이 가장 많았고 한국은 5번째였다. 한국도 어려운 시절 외국의 도움을 받으며 나라가 이 정도 발전했으니 이제는 빚을 갚을 때가 됐다. 국제협력단(KOICA) 정보문화진흥원(KADO)과 대학생봉사단이 각기 봉사 프로그램을 운용해 왔다. 5월엔 각 부처가 관리 지원하던 봉사단체들이 ‘월드 프렌즈 코리아(World Friends Korea)’로 통합됐다.
▷정부는 3년 후 해외봉사단 파견 규모를 연인원 4000명으로 지금의 두 배로 늘려 세계 2위로 끌어올리려는 계획이다. 해외봉사라면 대학생이 힘을 써가며 일손을 돕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지만 요즘은 꼭 그런 게 아니다. 의료 정보기술(IT) 농업 같은 전문기술을 가진 50~62세의 퇴직자들도 시니어 봉사단원으로 나갈 수 있다. 미국에서도 50세 이상 평화봉사단 가입자가 전체의 4% 정도였으나 올해는 7%로 높아졌다. 일자리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
▷“197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0달러 수준이었다. 학생들은 가난에 시달렸지만 영하의 교실 안에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넘실거렸다.”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평화봉사단원 출신인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미국대사의 회고다. 그렇게 자란 한국인들이 지금 페루 이집트 등 세계 곳곳에 병원과 직업훈련원을 지어주고 있다. 베트남에 이어 탄자니아 우간다 등에는 ‘코리아 빌리지’라는 이름으로 새마을운동을 전파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외봉사단 파견 상담센터(1588-0434)에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는 소식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