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 본관 1층에 자리한 ‘가시화 실’. 슈퍼컴퓨터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확인하는 데 쓰인다.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블랙홀 충돌 가상실험 모습. 블랙홀 2개가 충돌하기 직전(위)과 충돌 뒤 1개로 합쳐진 블랙홀에서 중력파가 퍼져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블랙홀 2개가 완전히 합쳐진 이후로는 중력파가 발생하지 않는다. 사진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 4호기 도입후 실험활발
“블랙홀 충돌시켜 중력파 제조”
서로 마주보며 달려오던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한다. 두 블랙홀은 하나로 합쳐지며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태세다. 사실 두 블랙홀은 진짜 우주가 아니라 대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있는 슈퍼컴퓨터 4호기 속에서 만든 가상 블랙홀이다.
가상 블랙홀 충돌 실험에 성공한 주인공은 최대일, 강궁원 KISTI 박사. 블랙홀 충돌은 평생 하늘만 쳐다봐도 발견하기 어려워서 두 사람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하기로 했다. 2007년 KISTI에 슈퍼컴퓨터 4호기가 들어오면서 가상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슈퍼컴퓨터 4호기는 처음에 설치된 1차 장비 기준으로 1초에 실수 연산을 30조 회나 할 수 있다. 2001년 들어온 3호기보다 6∼7배 성능이 뛰어났다.
이들은 지난해 3월과 8월 마침내 블랙홀 충돌 실험에 성공했다. 충돌하는 블랙홀의 질량이나 운동에너지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실험에만 2주일이나 걸린 대형 가상실험이었다. 최 박사는 “무거운 블랙홀이 충돌하면 중력파가 나온다”며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중력파를 관측하는 방법을 찾아내면 우주 초기에 나온 중력파를 찾아내 우주 탄생의 신비까지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근 연구 결과를 공개한 KISTI 연구팀은 서울대 부산대 연구진과 팀을 이뤄 올 9월 미국의 중력파 실제 관측 연구에 참여 신청을 할 계획이다.
슈퍼컴퓨터 4호기를 이용한 가상 우주 실험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팀은 지난해 우주의 초기 진화 과정을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다. 우주의 한 변을 260억 광년으로 계산하고, 질량을 가진 입자 86억 개를 가상으로 만들어 슈퍼컴퓨터에 넣었다. 수많은 입자가 우주 공간에서 어떻게 은하나 별을 만드는지 관찰한 것이다. 80일 동안 진행된 실험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 시뮬레이션으로 화제를 낳았다.
현재 KISTI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연구를 진행하는 기관은 200여 곳으로 우주를 비롯해 대기환경, 기계, 항공 분야 등에서 주로 쓰이고 있다. 올 7월에 2차 장비 설치가 끝나면 슈퍼컴퓨터 4호기는 1초에 실수 연산을 360조 회나 할 수 있어 세계 10위권의 성능이 된다. 이식 KISTI 슈퍼컴퓨팅센터 응용지원실장은 “슈퍼컴퓨터는 인간이 직접 진행하기 어려운 실험 환경을 가상으로 만드는 최고의 장치”라며 “대형 연구과제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