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만 버려도 행복하다/이정옥 지음/384쪽·1만3000원·동아일보사
“왼팔에 깁스를 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지따 할머니가 입소했다. 옷자락에서 상류층 냄새가 났다. 아니나 다를까 안하무인이다. 판사 부인이었다 한다.…지따 할머니가 판사 부인의 두꺼운 옷을 벗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노년을 홀로 보내는 일은 외롭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노년도 좀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저자도 홀로 실비양로원에 들어가 살았다. 이 책은 고급 실버타운과 무료 양로원의 중간쯤 되는 서민층을 위한 노인시설인 실비양로원에서 보낸 10년 동안 그가 보고 느낀 말년의 일기다.
저자는 노인이 버려야 할 것은 과거라고 말한다. 공부 잘했던 자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의 재롱, 이런 과거는 위안일 수 있지만 마약처럼 사람의 손목을 잡고 늪으로 끌고 들어간다. 노년의 행복이란 꽃밭에 꽃씨를 뿌리고 손자에게 편지를 쓰고 반짇고리를 정리하는 그런 소박한 일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지막 방법은 잡고 있는 손목을 놓는 일, 즉 ‘정신적인 홀로 서기’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면, 그러니까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자기 삶의 몫을 누리지 못하면 그것은 자기 영혼을 저당 잡히는 것과 같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