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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代 그때 그순간]고진화 전 의원의 ‘파천교 밑 원조 천막당사’

입력 | 2009-06-07 07:23:00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가 처음 이뤄졌고 10년 뒤 다시 정권이 넘어갔으니 이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정치 세력이 한 번쯤은 여당을 해본 셈이 됐다. 그러나 한나라당 출신의 고진화 전 의원(46,서울 영등포갑)은 공교롭게도 정치 인생 20년간 거의 유일하게 줄곧 야당에 있던 이력을 갖고 있다.

고 전 의원은 대표적인 '386'출신 정치인으로 김근태, 이부영 등이 주축이 된 전민련(89년)과 민주개혁정치모임(92) 등에서 야권 통합 운동을 통해 정치권에 데뷔했다. 1995년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통합민주당(일명 꼬마민주당)에서 활동했으며 다시 2000년에는 제1 야당인 한나라당으로 적을 옮겨 2004년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17대 국회에서는 야당의 원내부대표까지 지냈지만 2008년 선거를 앞두고는 공천조차 받지 못하고 집권당 의원의 길이 꺾이기에 이른 것.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전 지난 총선을 전후해서 시민단체와 함께 대운하 저지 투쟁을 벌였어요. 대운하 공약이 국민들에게 불신임 받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됐다고 생각하지만, 그 덕에 당에서 공천은커녕 '제명'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받았어요. 물론 당의 결정은 당헌당규에서 벗어난 결정이었기에 제 당적은 현재 매우 애매한 상태이긴 합니다."

영등포구 문래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나간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10년 만에 화려하게 여당으로 변신하는 시점에 조직으로부터 받은 '왕따'의 충격은 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애당초 정치를 오래 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면서 "자괴감도 들었지만 시간이 난 김에 예전에 미처 하지 못한 공부를 계속 하기로 마음먹고 박사학위(국제정치) 논문을 완성했다"고 들려주었다.

b>- 현 정부의 위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만….

"권력집중 현상을 문제의 본질로 봅니다. 이제는 목표가 같다면 서로 협력해 통치하는 게 기본입니다. 이른바 '협치'인 거죠. 문제는 현 정부가 상대를 완전히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권력이 독점화 하다 못해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니…, 공존과 나눔이란 철학이 아예 없는 거죠."

- 따지고 보면 결국 한나라당의 책임, 나아가 의원님의 책임 아닌가요?

"…저 역시 입을 다물고 있었던 사람 가운데 하나죠. 모두가 착각했던 거예요. 과거 정부보다 더 잘해야 하긴 하는데, 무조건 김대중-노무현이 아닌 길로만 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단적으로 오바마의 인재운용 방식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미래 경쟁자가 될지 모르는 공화당의 인재를 중국 대사로 보낼 정도인데 우리 정권의 사고는 얼마나 민심과 동떨어져 있고 오만한 지…. 지금도 한나라당은 위기에 처하면 '천막정신으로 돌아가자'란 구호를 외칩니다. 사실 천막당사가 바로 오늘날의 한나라당을 있게 만든 1등 공신이죠. 그러나 이후 각종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개혁적 지향이 거의 사라져갔어요."

2004년 3월 당시, 한나라당은 존폐 위기에 직면했다. 우선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안겼다. 이에 대한 반발로 3월12일 당 지도부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강의 수를 결행한다. 이 선택이 최악의 결정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데는 단 몇 십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를 극적인 반전의 계기로 삼은 것이 잘 알려진 박근혜 전 대표의 '천막당사'다. 이 같은 '천막당사 신화'의 주역으로 당시 이상득 사무총장이나 장다사로 조직국장 등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원조 천막정신은 따로 있었다는 것이 고 전 의원의 회고다.

- 2004년 3월 19일 소장파 당원들이 한강 둔치에서 천막 농성을 벌인 사건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시 원내에 계신 분들이 투표를 통해 탄핵을 감행했잖아요. 그런데 저 같은 원외 위원장들은 선거운동을 시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들의 비판과 원성이 드높았어요. 그래서 '선거운동을 하고 돌아다닌다고 될 일이 아니라 국민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기획안을 작성해 원외위원장들에게 돌렸고 12명의 소장파들이 영등포구 파천교 둔치에 모이게 된 거죠."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러운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12명의 소장파들은 30분 만에 천막투쟁에 합의하고 점심시간을 활용해 서울시로 달려가 천막을 빌려와 설치했다고 한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을 용서해달라'며 천막을 친 이들에 대한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도 지대했지만 '쇼맨십'이라는 비판도 없지는 않았다.

- 천막 농성을 지켜본 당 지도부의 입장은 어땠나요?

"아주 곤혹스러워 했고, 비난도 많았습니다. 당시 최병렬 대표는 우리를 향해 '당에서 떠나라'고 했을 정도였고 공천반납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았어요. 그러나 결국 우리의 입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당시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이들이 모두 천막 당사로 찾아와서는 '당 대표가 되면 이 천막당사를 계승해 당에 천막 당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탄핵에 대한 부당성과 우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고 봐요."

- 박 전 대표도 이를 따라서 큰 천막당사를 시도한 거군요. 감동을 받아 그런 걸까요?

"감동을 받았는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우리가 먼저 실행을 하니 그 정신을 수용한거겠죠."

결국은 그는 탄핵 역풍을 뚫고 영등포에서 김민석 의원을 물리치고 원내 진입에 성공한다. 당시 원조천막 당사의 주역인 12명 가운데 그와 정두언 의원만이 원내에 진입했을 뿐이지만 지난해 18대 선거에서 상당수가 원내진입에 성공함으로 인해 한나라당 쇄신의 중심에 서게 된다.

- 지금은 한나라당의 천막정신이 사라졌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어떤 정신인가요?

"당시 그 천막 앞 플래카드에 '국민과 함께…'라고 써 붙여 놓았어요. 국민이 시대적으로 요청한 바람이 바로 국민 주권의 정신인 거죠. 기득권을 모두 다 버리고 밑바닥으로 가야 했는데 우리는 과거의 정치행태에 대한 반성 없이 행동했다는 겁니다. 한나라당의 '천막정신'은 언제나 국민 편에서 함께 하겠다는 의지이고 그게 무너져가는 한나라당을 살려냈는데 지금은…."

- 지금 17대를 돌이켜볼 때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무엇입니까.

"권력 구조 개편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게 아쉬워요. 우리 헌법에도 그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고민하면 가능한 얘기거든요. 오늘날 우리 정치는 대통령 한 사람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사실상의 1인 권력 시대가 됐잖아요. 과거에나 가능했던 정치로 이렇게 크게 성장한 대한민국을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에요. 외교와 안보를 책임진 대통령과 노동과 자본의 타협을 이끌러낼 실질형 총리가 공존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해요. 권력에서 거버넌스로, 통치에서 협치로…. 이명박 대통령이 꼭 알았으면 합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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